지난 20년간 오직 중소기업 현장만을 취재해온 이치구 전문기자가 매주
금요일 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숨은 얘기로 여러분을 찾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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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공의 한용희사장(52)은 머리에 여러개의 상처가 있다.

그가 머리카락을 들추는 걸 처음 봤을 때 의아해서 이렇게 물었다.

"머리에 왠 부스럼자국이 그렇게 많습니까"

그는 씁스레 웃으며 부스럼자국이 아니라 망치자국이라고 했다.

"네에? 망치요?"

한사장이 13세때의 일이다.

그는 대구수창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구기어공장에
취직해 쇠깎는 일을 배웠다.

야간중학을 다니느라 낮에기계앞에서 자칫 조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본 현장감독이 지나가다 망치로 그의 머리를 때렸다.

안전사고로 손이 잘려나가기 보단 망치로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는게
낫다며 고함쳤다.

게으름을 피우다가도 머리를 맞고 일을 잘못한다고 또 얻어터졌다.

한사장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쇠깎는 회사의 사장이다.

첨단기계부품을 만들어 두원정공등에 납품한다.

산업기계를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도 한다.

요즘 중소기업들이 어렵다는데도 재작년에 6억원의 순익을 냈다.

지난해엔 18억원의 신규설비투자를 했음에도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그를 보면 "참중소기업인이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숱한 자갈밭길을 뼈깎는 노력으로 쇠만 깎으며 이겨내서다.

척박한 중소기업 생존환경속에서도 머리의 상처를 만져가며 혼자힘으로
꿋꿋이 싸워 첨단기업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오토닉스 대정기계 미래산업등 무척이나 많은 기업들이 이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경쟁력을 키워왔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는 중소기업을 탓하기 바쁘다.

자생력이 약하고 기술이 뒤진다며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짚어보자.도대체 우리가 중소기업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가를.

"금융대출"을 해주고 왜 "자금지원"이라고 말하는가.

높은 이자를 받고 원금을 도로받아가면서 "지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은지.

사실 중소기업에겐 지원보다는 피땀흘려 일한 만큼의 제몫만 돌려주면
될 것 같다.

현재 국내산업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업체수 99%, 생산액
54%, 고용 72% 수준.

바로 이 수준만큼의 금융을 할애해주고 재정을 투자해주면 된다.

열명중 일곱명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중소기업이 낸 세금으로 재정이
꾸려진다.

국산완제품을 한번 뜯어보라.

속안에 든 건 대부분이 중소기업제품이 아닌가.

따져보면 우리가 중소기업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중소기업의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따라서 이제 더이상 중소기업자의 머리를 망치로 치진 말자.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