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을 발행하지않는 가구회사"

"불황기에도 힘차게 성장하는 중소기업"

"하이파가구"브랜드의 명인(대표 황산규)에 따라다니는 수식어이다.

사무용 학생용가구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품질하나로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온 업체로 주목 받고있다.

창업7년만에 전국에 1백20개 대리점을 두고 매출액 2백20억원을 바라보는
튼튼한 기업으로 우뚝 선 것.

지난 95년부터는 카타르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등 중동지역에 사무용가구를
수출하기 시작, 외화획득에도 나서고있다.

20여년간 가구업계에 몸담아온 황사장이 지난89년 창업할 당시만해도
이 회사는 종업원 5명과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가구를 만들던 영세업체였다.

황사장은 당시 대부분의 가구업체들이 혼례용가구에 치중하고있다는데
착안, 주니어가구를 선택했다.

주니어가구 개발에 이어 90년에는 사무용가구를 개발, 승부를 걸었다.

이와 함께 생산원가가 다른 공법보다 두배가까이 비싸게 소요되는
하니콤공법을 과감히 채택했다.

이 공법은 비행기동체 인공위성체등의 제조에 응용되는 기술로 하중에
강하고 가볍다는 장점은 있지만 비싼 생산원가와 복잡한 공정때문에
가구업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않았다.

명인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내놨다고 내심 자부했다.

그러나 당시 "하이파가구"라는 생소한 브랜드를 소비자는 외면했다.

"소비자 인지도가 없어 시장진입에 애를 먹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지요.

그러나 동분서주 뛰어다닌 끝에 92년 롯데백화점 입점을 전기로
회사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게됐습니다"

황사장은 "이때부터 하이파가구는 고급제품이며 품질제일주의의
제품이라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심어졌다"고 설명한다.

매출이 증대되면서 대리점이 확충되는등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

결국 고객만족을 극대화하기위한 품질제일주의가 회사성장의 요인이 된
셈이다.

이로 인해 90년 28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매년 30~40%씩 꾸준히
성장, 95년 1백억원을 기록했고 올해엔 80만달러의 수출과 2백2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있다.

이같은 착실한 성장은 어음을 발행하지않고도 이익발생분을 회사에
투자할수있는 여유를 안겨줬다.

최근 가구업계에 불어닥친 불황에도 불구,명인이 크게 영향을 받지않는
것은 황사장의 남다른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울때 투자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불황일때가 오히려 회사의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더없이 좋을때라는 것.

명인은 지난95년12월 임대공장살림을 마감하고 20억여원을 들여 경기도
문산읍에 3천여평규모의 공장을 준공,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업무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기업이미지통합작업과 함께 96년8월부터는 라디오CM을,11월부터는
TV광고방송을 시작하는등 공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서고있다.

최근엔 가정용 가구사업에 진출, 신제품을 내놓고 독자적인 마케팅을
구사하고있다.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맞춤가구를 생산해 소비자에게 평생가구로
다가서겠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상권보호등의 철저한 대리점 보호정책을 통해 회사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도입하고있다.

황사장은 "앞으로 내수뿐 아니라 중동지역은 물론 상해를 중심으로
한 중국시장과 미국시장공략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다.

< 신재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