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가 이번에 내놓은 레간자는 "소리"를 테마로 하고 있다.

"소음(Noise)은 사라지고 소리(Sound)만 남았다"(대우자동차판매 한영철
이사)는 자랑을 가장 먼저 늘어놓는 것은 라노스와 누비라가 디자인과 성능
품질의 이미지를 회복하려 했다면 레간자로는 감성의 이미지를 세워보겠다는
뜻이 아닐까.

신차를 처음 접하면 외관이나 인테리어를 확인하는 것이 수순이겠지만
레간자는 시동부터 걸어봐야 했다.

대우의 "자랑"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키를 돌리자 시동이 걸리는듯 싶더니 웬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내
잠잠해진다.

공회전 상태에서 엔진룸의 소음이나 머플러를 통해 나오는 소음이 프린스
와는 딴판이다.

대우에는 섭섭한 얘기겠지만 라노스나 누비라에서는 소음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레간자에서 잡힌 것이다.

1천8백cc나 2천cc 엔진은 소형엔진에 비해 소음잡기가 월등히 어렵다.

"소리"를 강조하는 것은 세 차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차종의 소음을
잡았다고 자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경주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냅다 속도를 내봤다.

시속 1백20~1백30km가 넘어서야 바람소리 타이어소리가 실내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 속도에서도 잡소리는 없다.

잘 꾸며진 실내는 조용한 공간의 맛을 더해준다.

우드그레인을 비롯한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미국차 스타일의 대시보드는 파격적이어서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가 의문이지만 새로운 시도여서 신선하다.

밋밋한 도어트림, 운전석과 조수석의 햇볕가리개, 실내등, 도어록 등의
소재가 격에 맞지 않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합격점이다.

승차감도 앞자리와 뒷자리 모두 편하다.

특히 운전석의 레그룸과 헤드룸은 여유가 있어 좋다.

몸을 감싸안는 듯한 버킷스타일의 시트 덕분에 경주~서울간의 장거리
운전에도 그다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부드러운 느낌이지만 출렁이는 것은 아니다.

서스펜션은 앞쪽에선 충격을 잘 받아주지만 뒤쪽은 약간 튄다는 느낌이
든다.

코너링은 프린스에 비해 월등히 좋지만 직진 주행성은 뒤진다.

프린스가 후륜구동인 반면 이 차는 전륜구동이기 때문인듯 하다.

핸들링은 무거운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가벼운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이어가 받는 충격이 핸들에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손봐야 할
것 같다.

성능을 중시하려면 DOHC 엔진차가 제격이다.

2.0 DOHC 엔진 수동변속기 차량의 최고시속은 2백6km로 동급 최고속도다.

SOHC 엔진차도 시속 1백40km까지의 가속까지는 무리가 없다.

수동변속기도 3단이나 4단에서 가속이 제대로 이뤄진다.

독일 ZF에서 도입한 자동변속기는 엔진과 조화롭다.

다만 파워모드 윈터모드 등 다양한 기능은 없다.

수동변속기는 2~3단에서 충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괜찮은 부분 가운데 하나는 브레이크 성능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한 제동성능은 그만이다.

10점 만점이라면 9점이상을 주겠다.

괜찮다는 평이지만 레간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차 크기 문제다.

경쟁차에 비해 전고는 가장 높지만 전장이 다른 차에 비해 짧다.

실내도 넓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의 외관은 경쟁차에 비해 커보이지 않는다.

중형차는 커야 한다는 "허영파"를 오너 위주의 중형차를 찾는 "실속파"로
교화시켜야 하는게 레간자 성공의 최대 관건인 셈이다.

< 경주=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