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부도에 이은 삼미그룹의 법정관리신청으로 대기업그룹의 판도변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4월1일 총자산기준 30대그룹을 지정하고 있는데
올해의 순위바꿈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불황으로 어느 해보다 재계의
부침이 심해서이다.

몇몇 그룹의 탈락과 더불어 약진하는 신흥그룹가운데 5~6개가 신규로
30대에 입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30대그룹의 커트라인은 지난해보다 2천5백억원가량 높아진
2조1천억원선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규진입이 예상되는 그룹으로는 아남 신호 미원 거평 청구 신원이
꼽힌다.

반도체사업을 활발히 펼치는 아남은 지난해 광주에 대규모 반도체공장
준공과 부천의 웨이퍼가공설비공장 착공등으로 총자산규모가 2조7천억원으로
9천억원가량 뛰어올랐다.

따라서 지난해 32위에서 올해는 26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지난해 국내업체의 주력품목인 메모리반도체가 가격폭락으로 어려움을
겪은데 반해 반도체조립이 주종인 아남은 짭짤하게 성장, 타사들로부터
"잘나가는 아남"이라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창업한지 30년만에 명실상부한 대기업그룹으로 자란 아남은 여세를 몰아
21세기엔 10대그룹에 진입한다는 의욕적인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

"마이더스의 손" 이순국 회장이 이끄는 신호는 최근 몇년동안 기업인수에
가장 활발히 나선 그룹중 하나이다.

지난해에만도 동양철관 한국KDK 동양섬유 피자인 삼익등 5개사를 인수했고
올들어서도 환영철강을 사들였다.

이들업체중엔 아직 인수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계열로 편입이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총자산이 2조1천억원선에 달해 30위안에
진입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원그룹은 지난해 대한투금의 매각으로 30대에서 밀려났으나 세원그룹을
인수, 재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세원의 8개 계열사가 미원그룹으로 편입될 전망이어서 미원그룹 계열사는
22개로 늘어나게 됐다.

거평그룹도 총자산규모가 2조2천억원에 달한다.

거평은 최근 3년동안 대한중석 거평시그네틱스 포스코켐 대한중석건설
새한종합금융 강남상호신용금고 새한렌탈 태평양패션등 10여개사를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하는등 어느 그룹보다 활발하게 몸집을 부풀려왔다.

이에따라 계열사가 22개로 늘었고 사업부문도 기계금속 반도체 화학 무역
건설 유통 레저 서비스 금융 패션등을 망라하고 있다.

95년 46위에서 지난해 35위로 껑충 뛰어오르는등 성장가도를 달리는
청구도 유력한 후보그룹중 하나이다.

청구는 지난해 분당블루힐백화점을 개관하는등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왔는데
그룹측은 "올해는 30대 진입이 어렵지 않겠느냐"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백화점사업진출등 사업확장이 활발한 나산도 총자산이 2조2천억원에
달해 30대 진입가능성이 크다.

매년 30대그룹에는 1~2개가 탈락하면서 신규진입을 해왔는데 올해처럼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되기는 처음이다.

이는 정보통신등 신규사업진출이 활발한데다 어느때보다 기업인수합병도
활발했고 위장계열사의 신규편입이 이뤄지면서 자산규모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30대그룹으로 선정되면 대외적인 신인도 향상과 임직원의 자긍심
고취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여러가지 규제가 따른다.

상호출자제한과 지급보증제한 모든 계열법인의 의무적인 외부감사수감등
기업집중을 막기위한 각종 제한이 거미줄처럼 쳐진다.

제때 이행하지 않으면 과징금등의 벌칙도 뒤따른다.

따라서 거평등 일부그룹은 인수기업의 실사를 미루는등 어떻게 해서든지
늦게 들어가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김낙훈.노혜령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