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초.

부천지역 중소업체의 외환담당자 20여명이 모임을 가졌다.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자 나름대로 대응책을 협의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어이없는 주제로 자리한 토론만 거듭한채 별소득없이
끝을 맺었다.

은행을 통한 외환거래금액의 한도를 놓고 참석자간 지루한 입씨름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참석자들은 50만달러이하의 거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반면
일부 참석자들은 10만달러이상이면 은행거래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50만달러이상을 주장한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현행 "외환시장운용협의회"의
공동규약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 "우리가 지금까지 공연히 비싼 수수료를 물고 전신환거래를 했겠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얘기는 틀린 것이었다.

현재 10만달러이상이면 은행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다.

규약상의 제한이 있지만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여건을 감안,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알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뜻밖에 모르는 중소기업들이 너무도 많았다"
(조흥은행 부천지점 A씨)

우리나라에서 외환정보에 가장 어두운 기업들은 바로 이처럼 지방에
자리잡고 있는 중소제조업체일 것이다.

평소 환율동향을 체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외환시장의 움직임에도
관심이 없다.

이러다보니 턱없이 높은 수수료를 주고 "안해도 될" 거래를 하는 것이다.

현재 은행을 통한 외환거래 수수료는 달러당 10전수준이지만 전신환거래는
당일 매매기준율의 -0.4%~+0.4%로 훨씬 비싸다.

물론 "거래규모가 작은데다 원화자금사정이 워낙 빠듯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K사 관계자)는 "해명"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극히 초보적인 사안조차 모르는 중소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상담도중 지금이 고정환율제도인줄 알고 있는 기업들을 대할 때면 기가
막힌다"(산업은행 외화자금부 손상훈)는 얘기가 은행가에 비일비재하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줘도 잠깐의 상담으로 될 일이 아니다.

자리는 언제나 "알아서 해주시오"로 끝난다.

이처럼 외환시장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부의존도가
필요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대외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손실을 입은 대표적인 사례가 코리아니켈.

수입의존도가 1백%인 이 회사는 지난해 매매손 29억원을 포함해 모두
39억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환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헤지를 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각 경제연구소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경제
기관들이 환율이 평가절상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며 "구태여 헤지의 필요성
을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손해를 입은 중간에라도 헤지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여러군데 문의를 해본 결과 하반기에는 틀림없이 원화의
시세가 오를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해 기업규모에 비해 막대한 손해를 입고 나서야 올들어
부랴부랴 선물환거래를 시작했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