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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어렵다.

수조원대의 환차손이 발생하면서 외화부채의 상환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율변동에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막대한 특기 손실을 입는 기업들도 많다.

외환전문인력도 없고 키울 의지도 없다.

그나마 "생각"있는 기업들은 수출대금을 외화예금에 쌓아두면서 불안을
달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업들의 "세계화" "국제화"는 요원한 일이다.

기업들의 외환관리능력을 긴급진단한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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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11시 S은행 딜링룸.

평소 외환거래가 있던 C사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중으로 1백만달러가 급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는 "투데이" 거래(당일 결제거래)가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현행 외환관리법상 투데이거래는 오전 10시30분까지만 허용된다.

"왜 늦게 전화했느냐"는 딜러의 질문에 이 답답한 회사의 실무자는 "정확한
결제금액을 계산하지 못했다"는 궁색한 이유를 댔다.

그동안의 "안면"도 있고 해서 은행 자체 포지션내에서 1백만달러를 융통해
줬지만 담당딜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식으로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나"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같은 날 진로쿠어스는 투데이시장에서 맥주원료 수입결제대금으로 50만달러
를 사들였다.

연간 1천만달러안팎의 외환을 거래한다는 이 회사에는 전담직원이 단 한사람
밖에 없다.

그나마 원화자금과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외환정보를 받아보는 모니터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그날 그날 필요에 따라 투데이거래를 하고 있다.

대기업인 LG금속도 마찬가지.

자금팀내 두세명의 딜러가 있으나 원화자금업무와 같이 병행하고 있다.

연간 1억달러규모의 외환을 만진다는 이 기업도 아직 소액이긴 하지만
투데이거래를 하고 있다.

"결제자금 예측이 잘 안된다"는게 이유.

그나마 이 정도는 다행이다.

결제 당일 아침까지 결제금액을 모르고 있거나 팔아야 할 물량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기업이 허다하다. (S은행, 김모 딜러)

평소 환율동향에 무관심하다가 갑자기 결제가 닥치면 부랴부랴 은행을
통해 매입을 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현주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경 뉴욕 런던 등 국제금융시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투데이" 거래가 서울외환시장에서는 전체 거래물량의 10~15%선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국제거래 관행이 3일 결제인 "스폿" 거래로 움직이는데 반해 우리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진작부터 투데이거래를 없애려고 했지만 기업들의 자금운용에 혼선을
초래할 것같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한국은행 허고광 국제부장)는 실정
이다.

문제는 환율이 갑자기 오르거나 내릴때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는 것이다.

무계획적으로 자금운용을 하는 과정에서 "비싸도 사야 하고 싸도 팔아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산업은행 외화자금실의 문성진 대리는 "지난달 환율이 급등락을 거듭할때
투데이거래를 해오던 많은 기업들이 거액의 매매손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정기적으로 환율을 체크하는 기업들은 극소수이다.

연간 1천만달러이상의 외환을 만지는 2만여개의 국내기업들중 "인포멕스"
"로이터" 등을 통해 환율정보를 받아보는 기업은 전체의 3%수준인 6백여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중에는 경방 대한제지 신호페이퍼 삼미특수강 삼화제지 델코 등 상당수의
중견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밖에서 벌어 안에서 터지는" 양상이 만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