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는 여야간에 사실상 합의된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여야간의 정치적 협상과정에서 노동법 개정안이 국가경쟁력 제고를 통한
경제 살리기라는 당초 원칙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일부 합의사항중엔 경제에 부담을 안겨주는 개악조항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제계가 가장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부분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위한 기금조성.

비록 여야가 완전히 합의를 보지는 못했지만 노사가 기금을 적립하고 이에
대해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자 이는 원칙을
그르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총관계자는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것은 노사관계
의 기본 원칙이자 국제적인 관행"이라며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노조 전임자 급여를 위해 공공성격의 기금을 신설한다는
것은 노조의 의무를 국민전체에 전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발상이야말로 경제를 살리자며 추진했던 노동법 개정이 되레 경제에
부담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꺼꾸로 간 사례라는 얘기다.

전경련 관계자도 "이번 노동법 개정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면 노조
전임자 임금은 당연히 노조 회비로 충당하는게 원칙"이라며 "앞으로
사업장별로 복수노조가 생기고 전임자가 늘어나면 기금을 만들더라도 그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 임원은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조합원 회비로 충당해야
전임자 수나 조합비 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노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기존 노조의 재정자립 부실을 이유로 전임자 임금지급을
위한 기금조성안에 여야가 합의한 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처방"이라고 지적
했다.

경제계는 어쨌든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이 복수노조
허용 유예와 날치기 통과라는 흠 때문에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했고
결과적으로 이같은 시간낭비와 원칙훼손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쪽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다.

별다른 대안도 없이 정치논리로 노동법 개정에 임한 야당에 대한 시각은
물론 더욱 차갑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