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술탄 이스칸다 무다 지역.

도심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모터타운"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세계
주요 자동차메이커들의 쇼룸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는 곳은 "아르테리 모터인도
나시오날사".

지난해 10월부터 인도네시아 국민차인 "티모르"(기아자동차 세피아)를
팔기 시작한 기아티모르모터스의 딜러다.

"매달 1백50대 이상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매력이지요"

이 딜러의 영업을 총괄하고 있는 룰리 마노포씨는 국민차의 출발이
예상보다 좋다며 곧 쇼룸을 4곳으로 늘리겠다고 말한다.

이곳에 한달 일정으로 서울에서 파견된 기아자동차서비스의 정비사들도
현지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에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티모르의 판매는 모두 1만2천대.월평균
2천~3천대꼴이다.

"앞으로는 월 판매량을 4천대까지 끌어올린다"(기아티모르모터스
한상훈사장)는 계획이다.

연간 5만대를 넘지 않는 인도네시아 승용차시장을 아예 "싹쓸이"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다.

"국민차" 타이틀에 걸맞게 각종 혜택을 받고 있는 만큼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국민차의 위세는 이제 막 국민차사업이 시작된 인도네시아에서보다
이미 12년째 국민차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실감할 수 있다.

콸라룸푸르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스치는 승용차는 이나라의
국민차 "프로톤" 일색이다.

여느 개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말레이시아정부가 일본 미쓰비시와 합작으로 설립한 프로톤은 이미
말레이시아 자동차시장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제2의 국민차업체인 페로두아사의 물량을 합치면 연간 25만대의
말레이시아 자동차시장은 80%이상을 국민차업체들이 잠식하고 있다.

국민차업체의 위세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서 나온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기아티모르모터스는 최고 65%나 되는 수입부품 관세는
물론 차값의 35%인 사치세까지 면제받고 있다.

1백25%에 이르는 관세와 추가로 75%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수입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관세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현지조립(KD)방식을 택하는 업체들도 많지만
부품의 국산화율이 60%를 넘지 않으면 관세와 사치세를 물어야 하는 까닭에
국민차업체와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이들 국가가 국민차업체를 지정해놓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2003년 아시아자유무역협정(AFTA) 발효에 앞서 자동차산업에 확고한
발판을 갖춰 아시아 자동차시장의 주도적 위치에 서기 위해서지요"

지난달 24일 기아티모르 국민차공장에서 만난 텅키 아리위보 인도네시아
통상장관의 설명이다.

2003년이면 현재 나라별로 40~1백25%나 되는 완성차 수입관세는 대폭
인하된다.

완성차 관세가 철폐되면 그동안 자동차산업을 키워놓은 나라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국민차사업은 외국업체들을 끌어들여서라도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여야만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셈이다.

아세안국가들간의 경쟁에 한국업체와 일본업체들이 합작 파트너로
끼여들어 지원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오는 2005년이면 적어도 3백만대 규모로 커나갈 동남아 자동차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아세안국가간, 선진업체간 "2중 경쟁"의 양상을 띠며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다.

< 자카르타=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