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규제를 혁파함은 물론 행정.금융서비스가 기업위주로 제공될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

지난 7일 김영삼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혁파"라는 단어.

혁파라는 다소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규제완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만큼 금융개혁위원회 설치는 곧 금융규제를 과감히 완화하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금융규제는 그동안 금융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기업들의 금융비용부담을
가중시키고 금융산업을 낙후되도록 만든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

금융규제가 얼마나 많은지는 지난 95년 2월 전국은행연합회가 정부에 제출한
"금융규제완화 건의사항"이란 책자에서 금방 나타난다.

연합회는 이 책자에서 당시 존재하는 금융규제를 8개항목 3백83개로 분류
했다.

구체적으론 <>경영관리 1백13개 <>수신.금리.신용카드 38개 <>여신.관리
86개 <>외국환.국제 49개 <>신탁.증권 44개 <>통화.자금 8개 <>세무업무 31개
<>기타업무 14개 등이다.

그러니 한 은행이 다른 은행과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
하는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물론 그동안 규제의 상당부분을 완화해 왔다.

또 규제완화에 대한 스케줄을 제시해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별로 달라진게 없다고 느낀다.

규정상으론 완화됐지만 "창구지도"라는 명목아래 이뤄지는 관행적 규제가
엄청나서다.

대표적인게 금리 상품 서비스 자산운용 인사.경영에 대한 규제다.

금리의 경우 일부 요구불예금을 제외한 대부분 여수신금리가 명목상 자유화
돼 있다.

그럼에도 은행간 여수신금리는 별로 다르지 않다.

은행들의 "묵시적 담합"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국의 지도가 가장 큰 이유다.

상품개발도 형식적으론 자유화 돼 있다.

그러나 약관심사과정을 통해 모든 상품이 사실상 당국의 "지도"를 받고
있다.

선진국처럼 각종 수수료를 자유화할라치면 국회에서부터 난리가 난다.

자산운용은 한술 더 뜬다.

증시안정을 위해, 혹은 시장금리안정을 위해 수시로 동원되는게 은행이다.

임원인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은행장은 물론이고 임원이라도 할라치면 "그럴듯한 배경"을 동원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규제가 존재하는 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건 요원한 일일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개혁의 출발은 바로 이런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게 금융계의 주장이다.

그러자면 재정경제원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의 역할과 자세전환이 필수적
이다.

금융산업의 질서와 은행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선 모든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발상의 전환이 전제돼야만 한다.

대신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제고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할수
있는 규제는 더욱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증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주식평가손충당금을 덜 쌓게하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때마침 재경원에서는 금융개혁에 동참하기 위해 잔존 금융규제를 과감히
완화키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따라
규제혁파는 물론 금융개혁이 성공할수 있을지가 판가름될 전망이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