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 차례다".

주요 그룹 임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장단 인사에 이은 연말 임원인사가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사무실 안팍에선 흉흉한 소문도 무성하다.

"어느 회사에서 몇명이 나간다" "누구누구는 이미 통고 받았다"는 등의
얘기가 나도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임원들의 가슴은 더더욱 꽁꽁 얼어붙는 듯하다.

사장단인사를 끝낸 삼성그룹에서는 "3백명 탈락설"이 대세처럼
나돈다.

그룹 전체 임원 1천3백명을 1천명 이하로 줄이려는 작업이 진행중이라는
것이다.

우선은 오는 1월로 예정된 임원인사에서 1백여명을 줄이고 2월 주총에서
다시 1백50명, 이후 추가로 다시 1백명을 내보낸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다.

지난해 69명의 임원이 물러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이같은 방안이 실현된다면 가히 "임원 대학살"이다.

그룹 비서실 역시 뒤숭숭하다.

8개팀이 5개팀으로 축소되면서 전체 인력의 30%가 계열사로 원대복귀할
전망."

누가 남아있고 누가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태라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는
게 비서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대그룹의 일부 계열사에선 벌써 내보낼 임원을 선정해 개별통보까지
마쳤다는 소문이다.

특히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건설 관련 계열사는 상당수 임원들이 옷을
벗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건설은 20여명, 산업개발은 15명 규모"라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계열사들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올해 경영실적이 신통치 않았던 회사일수록 나가는 임원의 숫자도 많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게 그룹의 인사원칙이라 뭐라고 항변하기도
힘들다.

이미 임원인사를 단행한 LG그룹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매일보던 상사의 얼굴이 안보이고 책상이 치워진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LG전자 L과장)는 하소연이다.

승진을 앞둔 고참부장들도 가슴이 답답하다.

"기존 임원도 줄이는 마당에 새로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자리라도 붙어있으면 다행이라는 얘기다.

LG그룹도 이달 초 단행한 정기 인사를 통해 30명 내외의 임원을
내보냈다.

LG반도체 LG화학 등 실적이 좋지 않았던 계열사의 경우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인사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

한쪽에서 특진이 있다면 또다른 쪽에선 조기퇴진의 멍에가 임원들을
억누른다.

"발탁"의 이면엔 "방출"이 있게 마련인 것.

더구나 내년엔 기업의 경영환경도 올해보다 악화될 전망이다.

이래저래 기업 임원들의 올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 될 듯싶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