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는 은행과 보험의 결혼이다.

그러나 사랑해서 죽고 못살아 하는 결혼이 아니다.

따지자면 정략 결혼이요 강제 결혼이다.

눈물을 머금고 팔려가는 신부가 보험이라면 이를 나꿔채가는 신랑은
은행이다.

아그리콜은행이 방카슈랑스 전략으로 보험시장에 진출한 것을 시발로
프랑스 은행들은 잇달아 보험에 뛰어들었다.

결국 개인생명 보험시장의 55%(94년 기준)를 은행권이 집어삼켰다.

이이유지.

적은 이익으로 적을 유인한다.

손자병법의 이 명제를 프랑스 은행들이 적절히 구사한 셈이었다.

"살기 위해 은행과 손잡았지만 믿지는 장사"라는게 보험사들의 푸념.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도태는 불보듯 뻔하다.

"합치기 싫으면 우리가 직접 보험사를 세운다"는 은행들의 협박 앞엔
속수무책이다.

이런 소식들은 물론 국내 보험업계에도 속속 전해졌다.

평화의 시절들을 구가해왔던 국내 보험사들에겐 난리가 난 셈이다.

"40만 설계사 조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모 보험사 임원은 걱정이
태산이다.

보험 영업의 틀이 깨지고 보험업 전반에 일대 변혁이 불가피 하다는 우려다.

"방카슈랑스는 은행에 절대 유리하다.

특히 외국 보험사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고 삼성생명의 박해춘 이사는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외국 보험사들이 국내 은행과 손을 잡을 경우 손안대고 코푸는 식으로
조직의 열세를 단박에 만회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국내 보험사들은 정부의 방카슈랑스 허용 방침에 핏발을 세우고
있다.

이병물식.

적이 대접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국내 보험사들이 내부단속에 나서면서 내세우는 말이다.

"섣불리 나서지 말라"는 말도 보험사 간부들이 되뇌이는 말이다.

덥석 물었다간 물린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그러나 방카슈랑스는 대세다.

OECD에서 방카슈랑스를 막았다간 "촌놈" 취급을 받는다.

"우리도 새로운 국제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의
정익준 수석연구역은 말하고 있다.

더구나 국내 보험사들의 영업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온 터다.

40만의 설계사를 유지하다 보니 비용도 엄청났고 모두 계약자들이 부담해온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국내 보험사들간의 과열 경쟁도 골칫거리다.

적(은행)과의 동침을 먼저 이뤄내자는 것은 후발 생보사들과 중하위
손해보험사, 외국계 보험사들이 대형 보험사들을 따라잡기 위한 주요
전략이다.

후발사들은 "적의 적은 우리의 동지"라며 은행과의 동맹을 서두르고 있다.

벌써 제일화재는 동화 신한 기업 한미은행과 연계, 해외여행자 보험을
팔고 있다.

한국생명은 최근 주택은행과 포괄적인 업무제휴를 선언, 방카슈랑스
약혼식을 올렸다.

시그나 비질런트 AHA 등 미국 손보사들도 국내 은행들과 "합방"을 도모중
이다.

조만간 국제결혼을 알리는 청첩장이 금융계에 돌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