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 쏘세지 등 육가공 식품을 만드는 A사는 올초 물류관리를 "직영"에서
"외주"로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이른바 "쌍둥이 공차"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상황을 들어본다.

"완제품을 지방으로 공급하는데는 냉장차가 필요하다.

원자재인 냉동육을 지방에서 가져오기 위해선 냉동차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본사 공장을 출발하면서 냉동차 냉장차 2대가 1개조로 내려갈때가
많다."(A사 K상무)

결과는 왕복으로 한차씩 텅텅비는 "쌍둥이 공차"로 나타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된 사장은 크게 화를 냈다.

운송 담당자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했음은 말할 나위없다.

불똥까지 튀어 창고 관리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1백명이 넘는 관리원을 두고도 창고안에 재고가 쌓여 썩고 있는 실태도
낱낱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는 비단 A사만의 얘기가 아니다.

주먹구구식 물류관리는 기업들의 관행이 돼버렸다.

물류관리 혁신을 외면해왔던 결과다.

여기엔 무엇보다 물류를 "음지의 사업"으로 여겨온 냉대 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물류를 중시하고 전문화된 관리기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소리가 존중받지
못했다.

전문 업체에 외주를 주는 것도 회사기밀을 노출시킬 것이라는 염려때문에
성사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정 관념을 깨버린다면 문제는 확 달라진다.

전문 업체는 그야말로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의 A사로부터 물류 용역을 맡은 업체는 자체 개발한 냉동 냉장실
겸용 특수차량을 통해 공차율을 "0"으로 끌어내렸다.

그 덕택에 A사는 매달 1억3천만원이 들던 물류비를 1억원으로 3천만원씩
줄일 수 있었다.

물류전문화는 기업 뿐만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에도 도움을 준다.

기업들이 물류 관리를 전문 업체에 외주를 줄 경우 국가 물류비를 30~40%
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와있다.

1톤으로 1km를 갈 때의 운송비 조사에서 영업용 화물차가 3백30원으로
자가 화물차(5백3원)보다 34%가 낮게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평균적재율도 화물차가 96.9%로 자가화물차(90.4%)보다 높다.

평균공차율은 화물차가 17.1%인데 반해 자가화물차는 42.6%나 된다.(교통
개발연구원)

전문업체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여환 대한통운사장은 "기업들이 전문 업체에 화물 수송을 맡겨 공로
수송비를 20% 절감한다면 전체 제조 판매회사의 물류비를 1.6% 절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국가 물류비가 71조원으로 파악됐으므로 그중 1조1천2백억원을
공로 수송 "전문화" 하나만으로 줄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공로수송만의 문제가 아니다.

창고 보관에 드는 재고유지관리비도 혁신 대상이다.

포장비 하역비 물류정보비 일반관리비 등 주요 물류비들도 모두
"전문화"의 칼날로 깎아내릴 수 있는 항목들이다.

이처럼 전문화의 효력이 뚜렷한데도 물류 현실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공로수송에서 영업용 차량의 수송분담율은 지난 85년에 28%였던 것이
94년엔 19.3%로 줄어들었고 비영업용은 72%에서 80.7%로 늘어났다.

같은 물량을 수송하더라도 영업용에 비해 3배의 차량이 소요돼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것이 뻔한데도 물류 전문화는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외부 전문 물류업체를 부분 또는 전면 이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29.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제대로 물류관리를 할 능력도 없으면서 정보 유출이나 경비
지출을 꺼려 그저 붙들고만 있다"(대한상의 김종택 물류과장)는 진단대로
기업들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기업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물류업계를 뒤져봐도 듬직한 파트너 하나 찾기 힘든 현실도 문제다.

특송사업만봐도 한국에선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제대로된
전문 업체가 전무하다.

일본통운이 세계 전역에 72개의 터미널과 1만2천대의 집배차량을 갖고
있는데 비해 국내 최대 업체는 8개 터미널에 2백91대 수준이다.

이처럼 미미하다보니 눈에 쉽게 띄지 못하게돼있다.

이용한다해도 그 요금과 서비스가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결국 물류의 세계에선 전문가(업체)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주먹구구식 물류관리는 고물류비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오직 전문화를 통해서만 물류관리가 "물류테크"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물류 전문업체를 향한 아웃 소싱을 주도할줄 아는 안목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국제물류시대에는 CALS(통합물류.생산시스템) 등에 정통한
물류전문가(업체)만이 경제 전쟁을 감당할 수 있다는 데 이견은 없다.

"물류전문가가 OK하지 않으면 제품 기획부터 올스톱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물류과정에 맞지 않는다면 상품 가치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인식이 이 정도로 높아지지 않는다면 물류는 계속해서 천덕꾸러기로
남고말 것"(신양로지스틱스 하만덕대표)이란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할 때다.

< 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