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기아자동차 본사 7층에 위치한 CCI(Cost Control Innovation)실.

원가관리부서로 인사부 기획부 자금부등 그 어느 부서보다도 파워가
막강한 기아자동차 최고의 "실세"부서다.

돈과 관련이 있는 결재서류는 사장실로 올라가기 전에 반드시 이 CCI실을
통과해야한다.

자금부에서 "OK"사인을 한 서류라도 CCI실에서 빨간도장을 찍게 된다.

사장도 빨간도장이 찍인 서류는 결재하지 않는다.

파워가 실릴 수밖에 없다.

"CCI실의 최대과제는 원가절감이다.

CCI실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회사 이익의 크기가 달라진다.

당연히 통과를 의미하는 파란색 도장보다는 빨간색 도장을 많이
찍을 수밖에 없다"(탁인성CCI실부장)

기아자동차가 CCI실을 설치한 것은 지난 82년.

하지만 "봉고신화"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못했다.

원가절감의 중요성을 강조할만한 불경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기아자동차는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올 초 CCI실을 대폭
강화했다.

인원을 36명으로 늘리고 사장이 직접 실장자리에 앉았다.

기아자동차의 목표는 매년 경비의 30%를 줄이고, 3년내 재료비를 30%
낮추며, 매년 생산성을 3%씩 올려 현재 %에 머물고 있는 매출액대비
경상이익율을 3년내에 3%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른바 "PI-333"이다.

기아는 "PI-333" 실현을 위해 CCI실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난 2월 각 부서
및 단위공장별로 PI(Profit Innovation)라는 새로운 원가관리조직을
설치했다.

PI의 역할도 CCI실과 별반 다를게 없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두가지 도장을 들고 밀려드는 결재서류에서 원가누수를
발견하는게 이들의 주요 업무다.

CCI실은 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세세한 원가관리가 불가능하다.

반면 PI는 작은부분을 챙길 수 있다.

"CCI 분실"이라고나 할까.

파워도 CCI실만큼 세다.

어느 기업이나 경기가 안좋다 싶으면 광고비나 접대비부터 깎아대기
마련이다.

물은 다른데서 새는데 엉뚱한 수도꼭지를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불황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기아가 CCI실에 이어 각 부서에 PI담당을 둔 것도 더이상 미봉책으론
체계적인 원가절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단조직의 시각(PI)과 회사 전체의 시각(CCI)을 조화시켜 아예
불필요한 원가의 발생요인을 차단하겠다"(김영귀 기아자동차 사장)는게
이들의 목표다.

얼마전 CCI는 인쇄단가 축소작전에 들어갔다.

CCI에 올라오는 결재서류 내용을 보니 저마다 구매처도 다르고 재질이나
사이즈도 제각각이었다.

용지구매를 일원화하고 모든 것을 규격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통해 연간 1백30억원에 달했던 인쇄비용을 40억원이나 줄였다.

30%의 원가절감이다.

한번은 "크레도스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위한 마케팅실의 원가계산서가
CCI실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CCI실은 이미 크레도스에 대한 각 영업점소의 조사내용과
고객사랑방의 분석내용을 회사가 갖고 있다는 걸 알았다.

추가조사는 낭비란 판단이 섰다.

그 서류에 빨간도장이 찍힌 것은 물론이다.

기아는 이런 방법으로 지난 상반기동안 무려 1천3백억원의 비용을
줄였다.

올해 전체목표는 3천억원이다.

삼성그룹도 최근 그룹차원의 원가관리부서를 만들었다.

그룹 비서실 재무팀 산하에 설치된 이 부서는 3년간 30%의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해서 "330TF팀"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부서가 그룹 전체의 원가절감운동을 주도하게되는 만큼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것"(비서실 관계자)이라는게 삼성의 방침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원가관리부서인 CR(Cost Reduction )센터는
박병재사장이 공장장시절 직접 만든 조직이다.

대우자동차도 원가관리를 맡고 있는 NAC추진실이 사장직속이다.

물론 원가절감부서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면서 문제점도 생긴다.

영업사원들에게 전화비를 줄이라는 식의 "탁상형 원가절감안"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에도 원가관리부서의 기세는 한동안 등등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 짜야 불황을 넘기겠으니 말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