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산업 해양사업부 선망팀의 정우영대리(35)는 회사내에서 "남태평양
해결사"로 통한다.

남태평양에서 참치잡이도중 문제가 발생할때 정대리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되기 때문이다.

정대리가 근무하는 부서는 선망팀.배가 출항할때부터 귀항할때까지
조업환경과 사후처리를 지원해주는 일이주업무다.

그래서 출장이 잦다.

정대리의 경우 연중 절반이상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다.

"아무데서나 참치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조림용 참치는 주로 남태평양에서 잡기때문에 연안국에 입어료를
내야 합니다"

입어료는 나라마다 다른데 파푸아뉴기니같은 경우 배 1척당 연간
18만달러정도.

돈만 낸다고 무조건 잡는 것도 아니다.

각 나라별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수없이 많다.

어장에 들어가기 전에 해당국에 보고를 하는 것을 비롯해 어획량을
1주일단위로 알려야 하는등 절차도 까다롭다.

각 나라별로 금지수역도 있다.

그래서 분쟁의 소지가 끊이지 않는다.

분쟁이 발생할때 정대리의 실력이 발휘된다.

그러나 그는 "특별히 저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게 아닙니다.

7년동안 맺어왔던 현지인들과의 친분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지적수준이 낮다고 해서 깔보거나 함부러 대하면 될 일도 망칩니다.

진실되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는게 최선입니다"

파푸아뉴기니 마이크로네시아 솔로몬 기리바티등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코리아 정"이라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현지 수상장관들도 정대리의 빼놓을 수 없는 친구다.

그와 남태평양과의 인연은 지난 89년 부산수산대를 졸업한뒤 동원산업에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첫 부서배치를 받은 곳이 지금의 해양사업부 선망팀.

그는 입사한 이듬해 선망선의 전초기지인 괌사무소 주재원으로 옮긴다.

3년 11개월간의 남태평양생활이 이어졌다.

첫 아기도 여기서 낳았다.

그는 출장때 뚜꺼운 수첩을 반드시 챙긴다.

돌아올쯤이면 이 노트는 낯선 글로 가득차 있다.

"현지어를 발음나는 대로 한글로 적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하나 배워나갔지요"

그래서 원주민들과도 서슴없이 대화를 나눌 수있다고 한다.

영어는 수준급이고 일본어 태국어 스페인어 필리핀어등으로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그는 또 섬나라 원주민들에게 재주꾼으로 통한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일이다.

민속춤 행사에 초대받은 정대리는 수백명의 현지인들 앞에서 "룰라춤"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의 현지인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지난해는 키리바티 파파뉴기니아 원주민들에게 회사직원들로부터 모은
헌 옷가지 7백여점과 슬리퍼 1천여개를 전달하기도 했다.

정대리는 회사를 정년퇴직할 때까지 남태평양과의 인연은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남태평양은 저에게는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장진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