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영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반도체를 처음 개발한 나라는 미국이지만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60~70년대 미국기업의 투자로 조립산업부터 시작한 한국도 90년대들어
반도체산업의 신흥세력으로 등장하여 선진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3%로 일본의 39.5%에 크게 뒤져 있긴 하지만
작년부터 유럽의 점유율(8.6%)을 앞서기 시작했다.

한일 반도체 생산규모는 각각 2백48억달러, 4백89억달러로 일본이 약 2배
정도 많으나 수출은 각각 2백21억달러, 2백87억달러로 일본이 한국을 약간
상회할 정도다.

이처럼 일본의 수출비중이 낮은 이유는 반도체가 거대한 자국내 전자기기
산업에 우선 공급돼 전자기기의 부가가치를 높여주고 다시 이 제품들이
수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생산의 대부분을 메모리반도체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국내
수요에 한계가 있어 약 90%를 수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한일간 격차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 경쟁력 원천의 차이라고
판단된다.

첫째 일본은 지속적인 설비투자 확대로 양산효과를 극대화해 왔다.

특히 80년대 초부터는 메모리 뿐 아니라 비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대규모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양산효과에 의한
가격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런 양산화 전략과 시장선점 전략은 결과적으로 업계간의 치열한 경쟁을
유발시켜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도 90년대들어 엄청난 설비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나 메모리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58억달러였고 일본은 1백26억달러나
된다.

둘째 일본은 전후방 연관산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해 성장기반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다.

하부구조의 기반기술은 물론 재료.장비 등 주변산업과 전자기기 수요산업이
매우 발달되어 반도체산업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기반기술이나 주변산업 등 여건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반도체산업이 전개되고 있어 외부 환경 변화에 크게 영향받는다.

한국의 재료.장비 자급률은 각각 38%, 8%에 불과하나 일본은 각각 99%, 80%
에 달하는 것이다.

셋째 일본은 반도체 생산품목의 다양화를 통해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다양한 제품을 균형적으로 생산, 경기변동의 영향을 줄이고 수요에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다.

일본의 메모리와 비메모리 비율은 41대 59로 세계시장 구성비(37대 63)에
근접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메모리가 91%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 금년과
같은 메모리 불황기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넷째 일본은 기술개발 투자를 확대, 연구개발 능력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반도체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은 일본이 11.5%, 한국이
11.1%로 거의 비슷하지만 일본의 매출규모가 한국의 2배가 넘는 것을 감안할
때 실제 투자되는 연구개발비 규모는 훨씬 크다.

끝으로 일본의 육성정책은 미래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창조적 기술개발의 근원이 산.관.학의 긴밀한 교류에 있다고
판단하고 "연구교류촉진법" 등을 제정했다.

연구인력의 유동성 확대, 기초연구 중시, 공동연구 확대, 풍부한 자금지원
등을 위해 최근 반도체 전문 공동연구소를 5개나 설립하여 기초 기반기술
개발체제를 구축했다.

이상과 같은 경쟁력 원천의 차이를 통해 우리 반도체산업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비메모리분야를 집중 육성하고 장비.재료산업을 확충해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장기적인 기반기술 개발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