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락에다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 주력 품목의 수익성 악화로 현대
삼성 LG 등 주요 그룹들의 안정적 사업구도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반도체라는 ''캐시 카우(Cash Cow)'' 사업을 발판으로 대중소기업
지원책, 환경투자 등을 추진했던 대기업들은 반도체 가격하락으로 수익성이
급속히 악화, 중.단기 사업 계획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삼성그룹은 20일 "하반기부턴 경기가 본격적으로 하강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각 계열사별로 우선투자 순위를 재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물산 건설부문등 일부 계열사에선 그룹차원에서 시행중인 대
중기현금결제나 사회공익사업에 대한 비용부담을 줄여달라고 요청,
그룹측이 이를 조정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이와관련 비서실 기획팀 주관으로 각 소그룹에 공문을 내려보내
8월 중순까지 계열사별 철수 사업을 보고토록 조치했다.

현대그룹과 LG그룹도 단기적인 투자 계획에선 변함이 없으나 최근의
경기하강이 장기화될 경우 투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방침이다.

특히 LG는 전략적으로 철수대상품목과 업종을 선정, 불요불급한 투자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현대 삼성 LG등 빅 3의 안정적인 사업구도가 흔들리는 것은 최근
경기하락과 함께 반도체 가격 하락에 기인한 면이 크다.

반도체 부문의 수익성 악화가 해당 전자회사는 물론 그룹에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 반도체 3사는 지난해 총 4조4천억원
(세후순익 기준) 규모의 막대한 이익을 냈다.

그야말로 그룹의 돈 줄(캐시 카우)역할을 했다.

그러나 올 들어선 상황이 반전됐다.

반도체 가격하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조5천억원의 순익을 기록했던 삼성전자는 올해 순익규모가
1조원에 채 못미칠 전망이다.

현대전자(지난해 순익 1조2천억원)와 LG반도체(7천5백억원)도 마찬가지다.

"적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해처럼 대규모 수익을 내기는 힘든게
사실"(LG반도체 관계자)이다.

문제는 반도체 3사의 수익성 악화가 단지 반도체만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반도체 부문은 해당 그룹의 "얼굴마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도체의 수익성악화는 그룹 전체의 사업구조를 재편해야
될지도 모를 "폭발성"을 갖고 있다.

해당 그룹은 그간 반도체 부문의 막대한 수익을 원천으로 각종 사업을
벌여왔다.

지난해 전무후무한 순익을 기록했던 삼성전자는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그룹의 모토인 사회신뢰경영을 비롯, 환경 경영,
고객만족경영 등을 앞장서 추진하는 핵심기업이었다.

돈을 가장 잘 버는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가격인하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부문의 이익을
통해서다.

삼성자동차의 증자과정에서도 전자는 큰 역할을 했다.

전체 자본금(3천2백25억원)의 24.8%인 8백억원을 출자한 것.자동차의
자본금을 계획대로 1조원까지 늘릴 경우 역시 "믿을 곳"은 삼성전자
뿐이다.

삼성자동차 소속 임직원 2백여명의 임금을 전자가 대신 부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두가 반도체 부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도 이익의 일정부분을 그룹과 공유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룹 차원의 이미지 제고 사업을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담당하는 데서도
이는 확인된다.

따라서 최근 반도체부문 수익성 악화는 단순한 가격하락 이상의 딜레마를
그룹과 해당 회사에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원래 반도체 신화는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막대한 투자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그룹"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지금의 반도체 신화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삼성 현대 LG 등 반도체를 끼고 있는 그룹들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이제 겨우 자리가 잡혀 "과실"을 딸 만하니까 여건이 다시 악화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이 또 다른 기회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들 3사는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런 "배짱"은 제 2의 반도체 신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90년대 초 반도체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할 때 일본 업체들은
투자를 자제했지만 국내 3사는 오히려 투자를 늘려 세계 수위자리를
차지했던 전례도 있다.

지금도 후지쓰(일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미국)등은 투자를 연기하고
있지만 국내 반도체 3사는 7조원 규모의 투자를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반도체"를 키워드로 한 대기업 그룹의 사업구조 조정은 한국적
경영시스템인 "그룹 경영체제"를 시험하는 무대가 될런지도 모른다.

반도체부문의 수익성 흐름과 향후 경기변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