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만납시다"

삼성그룹에서 분가한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새한미디어가 오는 2000년대
재계 정상진입을 향한 행보를 빨리하고 있다.

특히 한솔은 본가인 삼성도 실패한 개인휴대통신(PCS)사업권을 획득해
정보통신 사업의 발판을 구축했고 제일제당 신세계등은 최근 잇달아
정상을 향한 중장기 전략을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이들은 정보통신 종합유통 멀티미디어등 미래 유망사업을 집중 공략분야로
선정하는 등 "청출어람"을 겨냥해 모그룹인 삼성과의 일전도 불가필할
전망이어서 주목된다.

분가그룹중 "맏이"격으로 지난 91년 삼성으로부터 "독립 선언"한 한솔은
지난 10일 PCS사업자에 선정돼 창립이래 최대의 "기회"를 맞았다.

지난해 자산기준으로 30대그룹에 첫 진출한 후 명실공히 대기업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셈이다.

한솔은 이를 바탕으로 제지의 세계화와 함께 정보통신 분야에서 국내
선두를 노린다는 야심이다.

한솔관계자는 "이번 PCS사업권 획득으로 그룹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며 "이 여세를 재계 정상진입의 추진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마벨 한화통신 옥소리등을 전격 인수하며 재계 다크호스로
등장한 한솔의 지난해 매출액은 2조60억원.

이 그룹은 일단 올해 3조원 고지를 달성하고 오는 2001년엔 10조8천억원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재계 매출순위 "10대"의 반열에 오른다는 게 한솔의 "꿈"이기도
하다.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의 여동생인 명희씨가 오너인 신세계도 "정상을
향한 꿈"만은 남 못지 않다.

지난 93년 분가해 독자경영의 길을 걸어온 신세계는 지달초 "그룹형
신비전-40"을 발표했다.

이 비전의 골자는 창립 40주년이 되는 오는 2003년 매출 15조원을
달성해 세계 30대 유통그룹으로 발돋움 한다는 것.

지난해 매출이 1조8천억원이었으니까 7년내 8배가 넘는 외형성장을
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신세계는 이를위해 종합유통그룹을 근간으로 금융 서비스등 관련
사업분야로의 다각화와 해외진출도 적극 전략을 추진중이다.

삼성과의 법적 분리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제일제당은 지난달초
독자그룹화를 선언하고 그룹 CI(기업이미지통합)도 신설하는등 "제 갈길"을
더욱 빨리 가고 있다.

고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상무가 이끌고 있는 제일제당은
삼성의 "모기업"으로서 제2의 삼성신화를 창조하겠다는 당찬 의지를 키우고
있는 것.

지난해 매출 1조5천억원으로 재계 26위를 마크했던 이 그룹은 오는 2000년
8조5천억원으로 외형을 불려 재계 15위권에 이름을 올리겠다는게 중장기
목표다.

물론 이후에 정상도전에 나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지난해 제일합섬을 계열사로 편입해 기업 덩치를 키운 새한미디어도
독자 그룹화 선언을 준비중이다.

이병철창업주의 차남인 고 이창희씨 계열인 새한미디어는 다른 파생그룹에
비해 뒤늦게 그룹으로 출범하지만 화섬 비디오테이프등 주력분야가 탄탄한
만큼 성장잠재력은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새한미디어 관계자는 "올 9월께 중장기 경영전략과 CI를 포함한
독자그룹선언을 단행할 예정"이라며 "이때 신규진출 업종등 그룹의
정상진입 비전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파생그룹들의 행보에서 재미있는 건 "정상을 향한 길목"에서
삼성과 맞부닥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한솔이 PCS경쟁에서 삼성과 미묘한 갈등을 보였던 것처럼 신세계 제일제당
등이 전략분야로 잡고 있는 업종들이 삼성과 필연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분야이어서다.

제일제당이 지난해 미국의 드림웍스와 손잡을 때 삼성과 경합했던
것이나 신세계가 지방 할인점 사업에서 삼성과 맞붙을 예정인 것등이
그렇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파생그룹들과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부분에선 선의의
경쟁을 하면 그만"이란 반응이다.

그러나 분가한 그룹들의 자세는 다르다.

특히 삼성생명등 비상장주식 처리문제로 본가와 팽팽한 긴장관계인
제일제당등은 "결전의 순간에 인정 사정 없다"는 분위기다.

어쨌든 정상으로의 각개약진을 시작한 한솔 신세계 제일제당 새한미디어
등 "4형제 그룹"이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날"이 올지는 아직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