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탈리아 북부도시 토리노에서 23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개막된
제66회 토리노모터쇼가 내건 캐치프레이즈다.

말 그대로 자동차의 과거와 앞날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는게 이번 토리노
모터쇼의 특징.

특히 토리노모터쇼는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세계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을 주도하는 카로체리아(디자인에서 모형차
모델까지만 제작하는 전문업체)들이 토리노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로체리아들이 선보이는 디자인은 세계유수 메이커들의 응용대상
이 돼 왔다.

따라서 세계 자동차업체들은 이곳에서 자동차 디자인의 미래에 관한 힌트
를 얻는다.

이번 모터쇼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과거 스포츠카 위주의 컨셉트카들
이 대부분 사라지고 실용성이 강조된 소형차와 RV(레저용 차량)가 대거
선보였다는 점.

운전자에게 필요없는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안락함과 실용성을 강조했다는
얘기다.

카로체리아중 이탈 디자인사가 출품한 "포뮬러 햄머"만봐도 그렇다.

이 차는 피아트가 지난해 선보인 소형승용차 "브라보"를 컨버터블형으로
개조한 컨셉트카.

승차하기 쉽게 측면을 낮췄고 실내공간도 같은 배기량급 차보다
1.3배이상 넓혔다.

란치아가 선보인 "K 스테이션왜건"과 "K 쿠페"도 마찬가지다.

카로체리아인 피닌파리나사에서 디자인한 왜건형 차는 실내가 두가지
형태로 변형가능토록 제작됐다.

평상시 4명이 탈수 있으나 2명이 승차할 경우 뒷좌석을 눕혀 보다 많은
짐을 실을수 있게 했다.

쿠페형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 하기위해 공기 흐름에 방해되는 선을 아예
없애 굴곡 부분을 전혀 찾아볼수 없을 정도다.

실용성과 함께 환경및 안전성을 강조한 것도 이번 모터쇼의 흐름이다.

카로체리아들이 피아트의 "브라보" "브라바"를 기본으로 새롭게 디자인
한 차들은 대부분 소음을 줄이거나 연료를 절약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피닌파리나사가 출품한 소형차 "싱(Sing)" "송(Song)"은 컨셉트카이지만
차 밑부분을 공기역학적으로 설계해 연료소비를 최대한 줄인 게 특징이다.

카로체리아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베르토네사도 소음방지와 차체의
안전도를 중시한 2인승 쿠페 "엔두조"를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디자인 전문업체들이 실용성과 소형차에 주력하는 완성차
메이커들의 추세를 따르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한마디로 디자인도 이제는 생산자중심에서 소비자 위주로 변화돼야
살아 남을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게 이곳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때문에 컨셉트카 개념이 "완성차업체 입장에선 모형차를 선보인 즉시
생산해 판매하는 게 이득이기 때문에 미래형 컨셉트카보다는 당장 실용화
할수 있는 양산개념의 차를 선호할수밖에 없다"(파브리치오 루지아로
이탈디자인 수석디자이너)는 얘기다.

피아트사의 테스토레사장도 "이번 모터쇼는 미래의 꿈을 보여주기
보다는 곧바로 실용화가 가능한 차가 대거 선보였다는 게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기아 쌍용등 국내업체들이 이번 모터쇼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기존의 완성차들을 출품, 아쉽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추세에 발맞춰 쿠페형 차인 티뷰론을 출품해
인기를 끌었고 쌍용의 무쏘 가솔린 차인 "E32"와 기아의 전기차
"REV-IV" 등이 관심을 얻기 했지만 새로운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채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자동차업체들도 세계 유수메이커들과 경쟁할만큼 규모의 경제를
이룬만큼 이제는 세계 모터쇼의 흐름을 파악해 이에 걸맞는 차량들을
출품할수 있는 세련미를 갖춰야 한다는 게 이번 토리노모터쇼가 주는
메세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