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 회원제창고형클럽 하이퍼마켓등 신업태 대형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국내상품시장에 판도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선두업체에 비해 영업력과 자금력에서 뒤지는 2, 3위 업체들이 대형유통
업체 매장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일이 다반사로 생겨나고 있다.

회원제창고형매장인 프라이스클럽 양평점에서 음료제품을 가장 많이 판
회사는 두산음료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4,200만원어치의 음료를 팔아 롯데칠성음료(2,300만원)와
해태음료(3,100만원)를 크게 앞질렀다.

두산음료가 전체음료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지난해 25%수준이다.

롯데칠성음료(35%)에 크게 뒤지며 해태음료(23%)와는 비슷한 정도다.

전체시장점유율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프라이스클럽에서 나온 셈이다.

라면 빙과 유제품등도 마찬가지다.

가격할인점 E마트에서는 시장점유율 17~18%인 삼양식품이 지난달 14억원
어치의 라면을 판매했다.

시장점유율 60%인 농심보다 2억원어치나 더 팔았다.

유제품의 경우 해태유업이 지난달 프라이스클럽에서 8,000만원어치를
판매해 전체시장점유율이 훨씬 높은 남양유업(5,000만원)에 크게 앞섰다.

이같은 현상은 백화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두산음료의 월평균 매출이 3,700만원으로 1위,
해태음료가 3,500만원으로 2위, 롯데음료는 2,500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라면에서는 농심이 1,100만원으로 선두를 유지했으나 2위 경쟁에서는
삼양식품(320만원)이 빙그레(720만원)에 밀렸다.

대형매장에서의 제품판매실적이 전체시장점유율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제조업체의 영업력이 대형유통업체에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롯데제과 해태제과 빙그레등 빙과제조업체들의 전체시장점유율
차이는 소매상에 제공한 냉동고 숫자 차이와 비슷하다.

롯데제과는 전국 소매상에 7만5,000대의 냉동고를 보급했으며 해태는
5만9,000대, 빙그레는 5만8,000대를 소매상에 깔았다.

전체시장점유율은 롯데 36%, 해태 26%, 빙그레 23%이다.

냉동고 대수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한 아무리 빅히트상품을 내놔도
업계판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냉동고를 직접 설치하는 대형유통업체에는 제조업체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다.

유통업체들은 소비자가 많이 찾는 제품을 위주로 냉동고에 집어넣고 있다.

전체시장점유율과 대형유통업체의 판매비율에 차이가 생길수 밖에 없다.

유통업체들이 가격이나 물량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거래업체와
거래를 늘리는 것도 판매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라이스클럽 유하일점장은 "같은 품질의 제품에 대해서는 브랜드인지도
보다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한다"며 "시장점유율 1위제품은
대부분 가격조건이 나쁘기 때문에 2, 3위업체의 제품을 집중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물론 제조업체측에서 시장가격관리를 위해 할인점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대형유통업체가 많아질수록 시장에 미치는 제조업체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들은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달라는 유통업체의 요구를
무시하자니 시장점유율이 떨어지고 가격을 낮추자니 기존판매체제가
무너지는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시장판도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면서 제조업체의 힘이 유통업체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이다.

< 현승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