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사업 주도권을 둘러싼 대기업 그룹간 갈등을 잠재울 "대조율"이 재계
내에서 모색되고 있다.

4년전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자율조정하기 위해 열렸던 총수들의 "승지원
회동"과 비슷한 "확대재계정상회의"가 물밑 추진되고 있는 것.

재계가 이같은 조율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최근 PCS(개인휴대통신)등 신규
사업 진출과 데이콤 한국카프로락탐 국민투신등의 지분율을 놓고 재계내
힘겨루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계 총리인 최종현 전경련회장(선경그룹회장)을 중심으로 정몽구(현대)
이건희(삼성) 구본무(LG) 조석래(효성)회장등이 최근 비공식적으로 만나
"민감한 이슈" 들의 해법을 모색했다"(L그룹회장실 K전무)는게 그 단초다.

전경련은 "이러한 비공식 모임은 친분있는 총수들끼리만 이뤄지고 있어
재계현안들을 별다른 "파열음"없이 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확대회의"를 물밑 추진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움직임은 "전경련 회장단이 승지원회동처럼 한자리에 모여 공개적
이고 투명한 회의를 할 경우 "얽힌 실타래"들이 상당부분 풀릴 가능성이
높다"(H그룹 L전무)는 재계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총수회동"의 성사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가 "자율조정"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는 또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주요 그룹들간의 "파열음"은 자칫 재계전체의 이미지를
떨어뜨릴수 있다는 우려다.

데이콤 한국카프로락탐 국민투신 한미은행등의 지분율을 놓고 전개되고
있는 관련 대기업그룹간 실랑이는 일부의 경우 "신경전"을 넘어서 공개
성명전으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여기에 상반기중 뚜껑이 열릴 PCS등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건은 30대그룹
대부분이 사활을 걸다시피 달려들고 있어 대기업간 각축전은 당분간 이전
투구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재계는 지금 세대교체바람을 타고 젊은 총수들이 덩치키우기와
유망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는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같은 "선의의 경쟁"이 국민정서상 왜곡돼 수용될수 있다는
점이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만큼 국민정서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갈 경우
정부는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합리적인 경제논리를 따지기 보다 재계전체를
싸잡아 속죄양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게 재계의 공통된 우려다.

사실 현대의 국투지분 인수문제만해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사안의 특성상 관계부처와 사전 협의도 거쳤다고 한다.

공정거래법상으로도 문제될게 없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뒤늦게 "국민정서"를 내세워 제동을 걸었다는게 재계일각
의 해석이다.

이에따라 기업들은 건국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로 평가되는 통신사업자
선정방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존의 심사방식으로 특정업체를 "손들어"줄 경우 탈락한 업체들이 특혜
시비를 걸고 나올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재계 내부만 복잡하게 얽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신규사업에 따른 재계내부의 파열음은 어떤
식으로든 피해야 한다는데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며 "남은 문제는 회동의
직접 당사자인 총수들간에 얼마나 빨리 조율이 이뤄지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의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