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출연연구소 박사급 연구원들의 벤처기업 창업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철저한 이론무장과 실무연구경험을 토대로 독자개발한 신기술을 상품화,
기업가로서 또다른 성공을 꿈꾸는 박사연구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팔리는 상품"으로
연결, 시장정착에 성공하는 등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포함한 과학기술처 산하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의
벤처기업 창업사례는 지난해 8월말 현재 모두 38건.

이중 KAIST출신 연구원들이 18명으로 가장 많고 시스템공학연구소 12명,
그리고 표준과학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4명으로 뒤를 잇고 있다.

또 기계연구원은 2명의 기업가를 배출했으며 생명공학연구소와 원자력
연구소소속 연구원 각 1명도 모험기업을 운영중이다.

시스템공학연구소와 생명공학연구소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부설
기관이다.

이들 중소 "두뇌기업"은 88년 이전까지만해도 한 해 1~3개정도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89년부터 94년까지는 해마다 5~6개씩 시장진출에 성공하는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

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소속 연구원들 사이에도
창업바람이 불기는 마찬가지이다.

지난 91년 이전까지만해도 모두 6건에 불과했던 연구원창업이 94년부터
2년동안 8개가 늘어나는 등 지난해말까지 모두 14개를 헤아리고 있다.

ETRI출신 박사사장들은 특히 지난해 11월 ETRI벤처기업협회(EVA)를 결성,
정보교환및 연구소와의 공동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등 상호협력체제를 다지고
있다.

이들 연구원벤처기업은 대부분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빠르게 시장기반을
굳히고 있다.

KAIST출신 이민화씨가 지난 85년 세운 메디슨이 대표적인 성공사례.

초음파진단기를 주력제품으로 내놓고 있는 메디슨은 지난달 30일 상장
됐는데 첫날기준가가 7만원으로 1만3천원에 공모주식을 산 투자자에게
무려 4백38.5%의 투자수익을 안겼다.

메디슨의 상장 첫날 기준가는 90년이후 상장된 1백44개 업체중
최고기준가를 기록했던 남해화학(3만2천5백원)보다 2배이상 높은 것이다.

그만큼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이 높게 평가된 것이다.

또 시스템공학연구소 출신 안영경씨가 91년 설립한 핸디소프트는 성능이
뛰어난 "핸디오피스"란 그룹웨어 국산 소프트웨어개발에 성공, 대일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용을 제외하고 대량판매를 위해 개발된 패키지소프트웨어 수출 1호
기업으로서 스스로는 물론 연구소의 얼굴도 세워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따라 각 출연연구소는 연구원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를 확대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협동연구개발촉진법에 명시된 규정대로 연구원이 창업할 경우
3년간 휴직처리하고 있으며 일이 잘못돼 복직하는 경우 우선채용권을
부여하고 있다.

또 연구소시설및 설비이용편의는 물론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산업재산권
이용에 따른 기술료에도 특혜를 주고 있으며 보완연구 시험분석 품질검사
등 각종 기술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과기처도 이들에 대한 지원기반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강영철연구관리과장은 "연구원 벤처기업들이 대덕단지에 몰려있는 연구소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도록 인근 공단에 쉽게 입주할수 있는 방안을
모색중"이며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곳에 무인연구실을 만들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토록하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원 벤처기업창업을 보다 활성화해 중소기술기업의 토대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창업연구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KAIST출신으로 컴퓨터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퓨처시스템의 김광태
사장은 "최근들어 성공한 연구원벤처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창업을 문의하는
후배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들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기업과 상품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정책자금지원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김사장은 이를 위해 기술담보대출및 기술보험제도등을 서둘러 시행해야
하며 미상장 벤처기업들이 직접금융을 쉽게 조달할수 있도록 장외시장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할 때도 유사한 업체나 제품을
중점출품, 시너지효과를 올릴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상호협력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김사장은 덧붙였다.

< 김재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