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여의도 광장에서는 이른 봄의 찬바람 속에서 2백여명의
부녀자들이 "입주보장"이란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덕산그룹의 부도로 계열사인 무등건설이 짓고 있는 아파트의 공사가
중단되자 광주.전남지역 무등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대거 상경,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선 것.

이런 모습은 며칠뒤 서울 서소문의 유원건설(도급순위 39위) 본사에서도
재현됐다.

7월에는 대전의 영진건설( " 89위) 본사, 10월에는 청주의 (주)삼익( "
52위) 본사등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주택건설업계의 부실경영이 그 기업의 도산으로만 매듭지어지지 않는다는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한 기업의 부도가 당장 입주예정자에 대한 피해는 물론이고 사회.경제전반
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우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주택건설업체가 부도의 비운을 맞을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더 이상회생이 어려운 빈사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이제 국내건설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
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정부의 "건설산업정책"과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라는 측면에서
동시에 접근돼야 한다.

우선 정책측면.

정부는 그동안 건설업체 부도때마다 하청업체에 대한 세금감면, 한국은행의
긴급자금지원, 정부발주공사의 조기집행등 때늦은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성부도이후 정부는 "순발력"(?)을 발휘해 표준건축비인상, 분양가자율화
조기실시등의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나 이들 대책의 "약발"이 어느 정도일지 의문을 품는 건설업계 사람들
이 많다.

그동안 그래왔던 주택시장활성화대책이라는 "사후약방"을 내놓아 업계의
부도는 계속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부의 주택정책자체가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분양가자율화, 소형주택의무건설비율폐지, 주택건설시의 각종
인허가단계축소등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사항이 한층 설득력을 갖는다.

물론 주택시장은 국민생활과 직결돼 시장경제원리에만 맡길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렇더라도 "건설업을 서비스업종으로 분류해 여신상의 불이익을 주고
상업어음에 대한 한국은행의 재할인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지나친 규제"
라는게 L건설 P이사의 말이다.

이런 규제가 이미 건설업은 국민총생산의 12%선을 점하고 첨단산업화 종합
산업화되어 가는 특성을 무시함으로써 건설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업에 들어간 주택활부금융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지금의 주택업계의 어려움이 미분양주택의 증가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재의 15-16%에 이르는 주택할부금융의 금리를 일본
미국등 선진국이 시행하고 있는 절반수준으로 낮추고 활부대상주택을 완공
주택및 분양주택으로 확대실시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해법은 업계 스스로의 살아남기 위한 자구노력에
있다.

사실 그동안 국내건설시장 특히 주택시장의 경우 "말뚝만 박으면 분양이
되고 사업자는 갈쿠리로 돈만 긁어면 된다"는 우스개 소리에 가까운 말이
유행할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돼 왔다.

이에따라 수많은 재벌지망생들이 엘도라도를 찾아 건설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들은 한건만 잘 올리면 졸지에 사장대열에 올라서는 성공담을 부지기수로
낳았다.

이같은 가능성은 건설업체의 난립으로 이어져 88년 이전 4백70여개에
불과하던 건설업체수가 지난해에는 3천개로 6배이상 늘었고 주택건설업체는
4천2백여개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엘도라도에의 꿈"이 건설시장을 왜곡시켰고 업계전체를 최근의
위기국면으로 몰아 넣었다.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우성부도사태이후 "그동안 작은 업체의
사장들도 아파트가 조금 분양된다 싶으면 고급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사업
다각화란 명분아래 무모한 기업확장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건전한
기업인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고 일부 사업자들의 그릇된 경영행태를
비난했다.

이와관련, 우성건설부도가 최종 확정되던날 정부내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의 담당공무원의 말은 앞으로의 정책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 주목
된다.

그는 "부도는 부실경영의 결과일뿐"이라며 "어려울때마다 정부의 지원책이
보장된다면 기업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우성건설부도사테를 계기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건설
업계 지원에서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규제완화를 통한 자율경영의 토대를 마련해 주는 대가로 업계의
자생력을 요구하겠다는 의미다.

이제 건설시장에 더 이상의 엘도라도는 없다.

사장경쟁원리에 입각한 철저한 적자생존의 원리만 보장될 뿐이다.

생존의 수단마련을 건설업계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진 것이다.

또 신도시개발로 비대해진 조직을 적정선으로 감량, 조직의 유연성과
경쟁력을 갖추는 한편 무리한 사업확장을 지양하고 부실계열사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태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