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들은 다국적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길안내자 역할을
한다.

이들의 임무는 낯설고 소비문화가 다른 신천지에 먼저 상륙해 광고주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지도를 그려주는 일이다.

상품이나 매장이 "미사일"이라면 광고 컨설팅 물류서비스 등은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똑바로 날아가도록 도와주는 "레이더"인 셈이다.

유통시장 완전개방으로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과 함께 이들이 동반진출할
것이라는 점에서 국내 관련산업도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시장개방을 바라보는 국내 종사자들의 시각은 업종에 따라 조금씩
엇갈린다.

광고인들이 "소문만 요란했지 별로 먹을 것은 없다"며 시큰둥한 반면
컨설턴트들은 "성장과 시련의 기회"를 함께 맞았다는 반응이다.

"외국 유통업체의 진출로 관련시장은 커지겠지만 이것이 국내 업체들의
몫으로 돌아올 것인가""선진노하우와 자본력을 가진 동종의 외국업체들과
진검승부를 할 경우 누가 이길 것인가" 등이 이들의 공통된 화두다.

광고업계는 외국기업들이 국내에서 새 파트너를 구하기 보다는
외국광고사들을 이용할 것이란 점에서 시장개방의 이익이 별로 없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

제일보젤 덴쯔영앤루비콤 DDB니드햄 레오버넷선연 제일월튼톰슨
맥켄에릭슨 등 다국적 광고사들이 90년대 들어 단독 또는 합작형태로
이미 진출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유통시장 개방은 그동안 별다른 활약을 못해던 이들에 영양 만점의
"수혈"작용을 해줄 전망이다.

광고업계는 시장개방이 오히려 제한된 방송광고시간을 잡기위한
광고사간의 경쟁을 과열시키거나 직수입CF의 범람 등 악재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촌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동질화되며 코카콜라 나이키 등 외국기업들은
하나의 CF를 전세계에서 동시방영하는 월드와이드전략을 펴고 있다.

청소년층에게 인기높은 직수입CF들은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데다
비용도 국산CF의 5~10%에 불과해 빠르게 국내 제작기반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미통상협의에서 광고가 현안으로 떠올랐듯이 외국사들의
압력으로 국내 광고거래제도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방송광고공사의 민경숙박사는 "광고는 국민들의 가치관이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국내 광고사들이 외국광고사와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컨설팅업계는 외국 유통업체들이 국내에서 점포를 개점하려면 치밀한
상권분석이 선행된다는 점에서 우선 일거리가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컨설팅업체들은 경영전략의 제시나 상권분석의 원칙 등 큰틀에는
강하나 국민적인 정서나 소비문화의 패턴 등 각론에서는 취약할 수 밖에
없어 국내 컨설팅업체들이 단독 또는 공동으로 외국기업의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크다"(박복동 한국마케팅전략연구소장)는 것이다.

생산성이 낮은 토지에 수익성높은 복합상업시설을 개발해주는 디벨로퍼
(부동산개발업체)의 활약은 특히 두드러질 전망이다.

지난해 일본의 디벨로퍼인 후지타건설이 단독으로 국내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외국계 컨설팅사의 진출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하나로컨설팅 김용호부장은 "이른바 목좋은 위치는 국내 업체가 대부분
선점하고 있어 외국 유통업체들이 고도의 상권개발능력을 가진 자국의
컨설팅업체들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대기업들도 무조건
해외컨설팅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 이미 한 발은 걸쳐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재고관리대행업체같은 전문 용역업체에서부터 인테리어 설비나
포스기기 등 하드웨어까지 동반진출업종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개방의 거센 물살을 헤쳐가야 할 국내 관련업체들에 주어진 과제는
유통업체와 마찬가지다.

무한경쟁은 이미 시작됐으며 살아남는 방법은 최소한 외국업체와
대등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