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재계 인사에서는 대규모 발탁과 승진 못지 않게 "팽 바람"도
매섭게 몰아칠 전망이다.

세대 교체를 테마로 한 임원급 대폭 승진인사는 그만큼 고참 임원들을
"추위"에 떨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용도 폐기될 위기에 빠진 재계
인사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기업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입했던 "권력형 인사"와 "대정부 파이프
라인 인맥"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정리 대상이 아니겠느냐"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LG그룹은 요즘 회장단이 화학 전자 금융 등 각 CU(사업문화 단위=
소그룹)를 돌아가며 진행하고 있는 정기 컨센서스 미팅에 대한 뒷얘기가
온통 화제다.

올초 새 총수 자리에 앉은 구본무회장이 취임뒤 처음으로 주재하는 본격적
인 "각사별 경영청문회"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참 임원들이 이 "청문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문회 결과가 큰 폭의 "물갈이"가 예고되고 있는 임원 인사에 반영될
것임은 불문가지여서다.

모계열사의 고위 임원은 "한마디로 좌불안석이다. 요샌 밥맛도 잃었다"고
말했다.

세대교체 발탁인사 성과주의 등 올 인사의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는게 고참 임원들의 공통된
"피해 의식"이다.

<>.이런 "팽 신드롬"은 웬만한 그룹의 고참 임원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동병상련이다.

올 임원인사의 "대주제"가 세대교체와 물갈이라도 되는양, 대부분 그룹들이
대대적인 발탁인사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당초 25일로 예정했던 임원 인사를 이번 주말로 1주일가량
미루기로 했다.

올해부터 상무이하 임원 인사를 소그룹 재량에 맡긴 결과 각 소그룹장으로
부터 추천된 임원 승진대상이 무려 3백여명이나 돼 비서실에서 "축조 심의"
를 하라고 다시 내려보냈다는 것.

축조심의를 하더라도 사상 최대규모였던 지난해(2백2명) 수준보다 적어도
20% 이상 웃돌 것 같다는게 비서실 인사담당자의 말.

이렇게 많은 숫자가 임원 대열에 낀다는 소문에 고참 임원들은 기분이
착잡하다.

"발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퇴진"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퇴진의 대상은 아무래도 고참 임원들이 될 수 밖에 없다.

H그룹 K전무는 "사실 임원 세대교체가 이뤄지면 직접적 파장은 50대
전무들이 감당할 수 밖에 없다.

올라갈 자리(부사장)는 뻔히 제약돼 있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면 자리를
내주고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불안감을 털어놓았다.

실제로 김우중대우그룹 회장은 "50세가 넘은 전무이상 고참 임원들은 전부
해외로 보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총수 자리가 40대.50대의 "젊은 세대"로 넘어갔거나 넘겨질 쌍용
코오롱 등의 경우도 총수가 젊어진 만큼 임원들의 세대교체 폭이 커질게
분명하다.

이 모든 변수들이 고참 임원들로서는 하나같이 "악재"일 수 밖에 없다.

"어느 그룹이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50대 중반 이후의 임원들은 일단
교체대상에 올라 있다고 봐야 할 것"(L그룹 L전무)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상장회사협의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6백68개 상장업체의
임원 7천8백여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58.9%에 이른다.

그중 55세이상은 26.8%다.

어림잡아도 대기업 임원 4명중 1명꼴이 "팽"의 대상권에 들어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조짐은 이미 몇몇 그룹에서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 확인됐다.

삼성 코오롱 동양그룹 등에서 50대 후반의 "한참 일 좀 할 만한" 사장들이
옷을 벗고 물러나야 했다.

그 자리를 40대 초반의 "새카만 후배"가 차고 앉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세대교체라는 도도한 "장강"에 밀려 은퇴 위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과는 또다른 연유로 "팽"을 걱정하고 있는 재계 인사들도 적지 않다.

몇몇 대기업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던 대권력 로비가 벽에 부닥치게
됨에 따라 "로비용 임원"들이 용도 폐기될 위기에 몰린 것.

최근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정경유착 관행이 심판대
위에 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가 "5.18특별법"을 제정키로 하는등 5.6공 청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재계내의 "5.6공 인물"로 꼽히는 인사들의 거취도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실 대부분 대기업그룹들은 여야 정치권의 실세들과 "연"이 닿는 인사들을
대외 섭외를 담당하는 분야의 임원등으로 중용하는게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돼 왔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외풍을 막아주고 권력 핵심부나 경제부처 등에 입김을
넣을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씨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로비 인맥"의 행동 반경이 크게
좁혀지게 돼 이들중 상당수가 "방출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이 중에서도 특히 5.6공정권 시절의 인연으로 대기업에 몸담고 있는 고위
인사들의 거취가 주목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 그룹에서 10명 안팎씩의 군출신이나 권력 핵심과의 "특수 관계인"
등이 임원 중견간부 등으로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5.18관련자 처단"등 냉엄한 여론에까지 몰리고 있어 거취가 더욱
관심권에 들게 됐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