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파문을 호되게 겪은 재계가 "경영 새틀짜기"를 모색하고
있다.

실추된 기업이미지를 쇄신하고 조직을 추스리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다각도로 마련하고 있는 것.

사업 추진의 방편으로 "권력층 중심의 단선로비"에 치중했던 일부 대기업
그룹들이 학계 중견공무원 등 중치오피니언 리더로 "관리대상"의 타깃을
바꾸기로 한 건 그 대표적 변화다.

대기업들은 이와 함께 다양한 정보의 신속한 수집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업 논리개발"이 크게 중요해졌다고 보고 이를 위한 정보관리 시스템을
대폭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임직원들로 하여금 관료 학자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사외 "스터디그룹"등에
적극 참여해 "전방위 인맥구축"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평상시에 되도록 다양한 계층의 인맥을 구축해 놓음으로써 유사시에 "원군"
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마디로 신규 사업추진등에 있어서 편법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고,
"정공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노전대통령 부정축재사건에 연루돼 한바탕 홍역을 치른 기업들이 차제에
기존의 임기응변식 경영관행을 혁파하고 "정상적인" 경영시스템을 확립
하려는 몸놀림을 시작한 셈이다.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로비에서 관리로"의 사업추진 전략 변화다.

모대기업그룹은 최근 회장에게 보고한 내부 문건에서 "권력층에 대한 집중
로비로 사업권을 따내는 식의 경영은 더이상 무망해졌다"며 "여론을 주도
하는 오피니언 리더 계층을 폭넓게 꾸준히 관리함으로써 평소의 기업이미지
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또 "정보네트웍을 활성화하고 설득력있는 사업논리를 지속적
으로 개발해 여론을 파고드는 전략이 절실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 LG 등은 이미 이같은 방향으로의 경영전략을 적극 추구하고
있다.

LG그룹은 LG연암문화재단 등 공익법인을 통해 대학교수 문인 등 여론
주도층에 대한 후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매년 인문사회분야 등의 대학교수 30여명을 선정해 1~2년간의 해외연구를
지원하고 있는게 대표적 예다.

연간 1백20여명의 대학교수들을 지방사업장으로 초청해 산업시찰 기회를
주고 있기도 하다.

최근 1백억원의 기금을 출연해 "상남언론재단"을 발족시켜 언론인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에 나서기로 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삼성그룹도 2백억원의 기금으로 언론재단을 설립하는등 연초 이건희회장이
표방한 "사회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은 사회 각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은 이미 상당한 틀을 갖췄다고 보고
최근엔 <>재난에 대한 구호 <>소외집단을 대상으로 한 봉사 <>사회계몽 등
분야별 전담 조직을 만드는등 "사회경영"의 저변을 넓혀 나가고 있다.

현대그룹은 교수 대학생 언론인가족 등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산업시찰
초청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밖에 대우 선경 쌍용 등 대기업그룹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키로 했다.

<>.정보관리 시스템을 강화키로 한 것도 최근 두드러지는 추세중 하나다.

삼성그룹은 오는 2000년까지 국내외의 전체 그룹 정보체계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묶는 "싱글"이란 정보인프라를 갖추기로 했다.

대우는 정보를 등급별.검색계층별로 분류해 관리하는 "데이시스"라는
네트웍을 보강키로 했고 코오롱은 "콘사이스", 두산은 "베어스 네트"를
대폭 확대 운영키로 했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기업이 신규사업 추진등을 위해 일부 의존했던 권력
에 대한 로비등 비정상적인 편법은 더이상 통하기 어렵게 됐다"며 "따라서
평소의 꾸준한 정보수집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업논리 개발이 더욱
중요해지게 됐다"고 말한다.

<>.대기업그룹마다 임직원들의 사외 스터디모임이나 친목회에 적극
참여토록 독려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사회관계의 기초단위인 학연 지연 혈연 등 각종 "연"을 기업이미지 관리에
최대한 활용하자는 전략에서다.

임직원들로 하여금 이들 사외모임에서 자연스레 소속 그룹이나 회사의
경영방향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공감대를 형성토록 한다는 것.

일부 대기업그룹은 임직원들의 사외모임 참여 경비를 전액 "실비 정산"
해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방향 변화는 그동안 밀실에서 이뤄져 왔다는
의구심을 받아온 기업들의 사업추진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물론 기업 내부의
정보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가 기업이미지 실추등 최악의 타격을 초래한 노씨 비자금사건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내부 체질개혁을 이끌어내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