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총수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가속화되고 있다.

검찰은 7일 장진호 진로그룹회장을 소환조사한데 이어 8일에는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구자경 LG그룹명예회장, 최원석
동아그룹회장 등도 불러 조사하기로 했다.

또 소환조사와는 별도로 7일 검찰소환에 불응한 김준기 동부그룹회장에
대해서는 출국금지를 시키는 등 재계조사속도를 높이고 있다.

김중원 한일그룹 회장에 대해선 한일그룹측이 부회장을 대리 출두시키겠다
며 검찰의 의중을 떠보았으나 검찰은 직접조사를 이유로 단호히 거부했다.

대기업 그룹총수들에 대한 검찰의 직접조사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검찰은 앞으로 매일 4~5명씩 기업총수들을 잇따라 소환할 방침
이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 검찰의 조사대상 기업이 50~60개 기업총수들로 잡혀있다고
볼 때 적어도 내주말까지는 기업인조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검찰의 재계조사는 이미 계획이 서있으며 이수순대로 재계는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검찰은 이처럼 조사대상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수사인력도 이에 발맞춰
빨리 보강했다.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을 포함,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한 것이다.

특히 김부장은 지난해 대검 중수2과장으로 재직하면서 6공비자금 내사를
담당한 바 있어 당시 수사자료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로도 비춰진다.

한마디로 검찰의 이같은 발빠른 행보에서 재계에 대한 수사를 빨리 매듭
짓겠다는 검찰 수뇌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의 조기수습을 위해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업들의
자금제공에 관련된 사실확인에도 만전을 기하려는 모습이다.

검찰이 당초 ''선별소환''에서 방향을 선회, 관련기업총수들을 모두 부르기로
한 것은 바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검찰은 지금까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재계와 정계의
논리를 일부 수용, 관련 대기업 총수 전체의 소환조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뇌물성 자금으로 의심가는 기업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소환조사를 하겠지만
떡값이나 다같이 내는 ''정치성금''의 경우에는 서면조사나 방문조사등 제3의
조사방법을 써 재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태도를 자주 보여왔다.

또 대기업 회장들을 조사해 봤자 뇌물혐의를 입증해 줄 만한 진술을 기대
하기 어려운 만큼 차라리 계좌추적을 통해 물증확보에 주력하자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이같은 기류를 반영, 한때 ''수사가 장기화될 것이다'' ''수사가 난항
을 겪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왔던 것이다.

이같은 방향에서 벗어나 검찰이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본격적인 소환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것은 검찰 수뇌부의 입장이 미묘하게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차피 검찰의 당면 목표가 노씨의 사법처리인 만큼 돈을 준 대기업들에
대한 전원조사가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같이 소환대상폭을 넓혔다고 해서 사법처리 대상 기업들이
이같이 늘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검찰은 우선 이들을 상대로 제공한 자금의 정확한 액수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는 현재까지 소환대상자로 뽑힌 9개의 기업중 대형 국책사업에 연루된
기업은 대우그룹 한 군데 뿐이라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즉, 단순 떡값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상대로 일단 노씨의 비자금
전체규모를 파악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그러나 이런 대기업 소환수순과는 별도로 뇌물성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한보, 한양등에 대해서는 다른 차원의 수사를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한양그룹의 배종렬 전회장은 검찰이 민자당 가락동연수원부지 특혜
매각 의혹과 관련, 노씨에게 2백억여원의 뇌물을 건네줬다는 피의 사실
공표와 함께 전국에 지명수배를 내리는 한편 22개 계좌에 대한 추적작업도
벌이는 중이다.

또 한보그룹 정태수회장도 실명전환경위등에 대해서는 조사하느라 뇌물성
자금공여부분에 대해서는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으나 현재 정회장이 10개
계좌와 수표 1백90장에 대해 자금추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금명간 재소환할
방침이다.

이같은 검찰의 입체적인 수사전개는 정계및 여론의 목소리를 의식, 노씨
처리를 빨리 하자는 의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오히려 노씨 비자금의 뇌물성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고 졸속처리라는 비난도 검찰의 고민이 남아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