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은 재임 5년동안 약 5천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고
1천7백억원이 쓰고 남은 돈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재임기간중 3천3백억원의 비자금을
쓴 셈이다.

노전대통령은 주로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으로 받아 자금을 조성했으며 자신
의 책임아래 대부분 정당 운영비등 정치활동에 사용했다고만 언급했을뿐
구체적 사용처에 대해서는 일절 밝히질 않았다.

여권핵심부의 한 관계자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용도에 대해 "노전대통령의
말대로 상당부분은 정당운영자금으로 썼을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전대통령은 재임시절 여당의 운영비로 매월 20~30억원을
내려보낸 것으로 알고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재임기간동안 최소 1천2백억원을 정당운영비로 썼다는게 그의 관측
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거때면 노전대통령의 돈 씀씀이가 더 늘어났다"며
"노전대통령시절 4차례의 굵직굵직한 선거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91년 3월 기초의회 의원선거와 91년 6월의 광역
의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이 전국적으로 압승을 거둔 배경에는 "실탄"지원이
주효했다는것.

또 92년3월 14대 총선과 그해 5월의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자금이 뿌려졌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선거자금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14대
총선때의 경우 대체로 지구당별로 3~4억원씩이 지급됐고 접전지역엔 10억원
이상의 자금이 수혈됐다고 밝혔다.

이로 미뤄볼때 적게는 9백억원, 많게는 1천억원을 훨씬 웃도는 자금이 총선
에 투입됐으며 4차례 선거과정을 통털어 2~3천억원이 들었을것이라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 돈이 전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못박았다.

선거자금의 경우 국고보조금 정당기탁금등 합법적인 자금이 70%를 차지하며
비자금으로 지원받은 돈은 30%선에 그쳤다는것이다.

때문에 노전대통령 재임중 선거자금으로 풀린 비자금은 6백억~9백억원선
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1천2백억~1천5백억원에 달하는 나머지 비자금은 어디에 썼을까.

여권관계자들은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요소요소"에 건네졌을 것으로
보고있다.

노전대통령의 언급대로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데도 비자금이 사용됐지만
군 검찰 언론 사회단체등이 그 주된 대상이라는게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야권에도 적지않은 비자금이 건네졌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다만 야권지도자들에게는 직접 주기보다는 그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인사들에게 줬다고 한다.

그러나 여권 관계자들은 노전대통령의 이런 비자금 씀씀이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경우 전별금등 이른바 "용돈"의 액수를 놓고 전두환 전대통령
과 비교할때 "손"이 크지않았기 때문에 측근들도 모르는 용처가 따로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노전대통령 스스로가 비자금 용처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 한
비자금 조성규모와 "잔액"에 대한 의혹이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 김삼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