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가의 패배" 지난해 7월 파리의 앙드레 파스칼가에 있는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본부 제2회의실에서 조선협상이 타결됐을 때 국내
조선업계는 이렇게 비명을 내질렀다.

어쩔수없는 상황이긴 했으나 우리측 협상대표들이 국내업체들의 신조선
수주에 엄청난 타격을 안겨줄 선가덤핑규제와 정부보조금철폐 조항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결된 협정의 정식명칭은 "상업적 수리와 조선업의 정상적
경쟁환경에 관한 협약"으로 내년 발효 예정이다.

명칭에 그대로 드러나듯이 이 협정의 골자는 정부보조금등을 등에 업는
저가수주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것.다시말해서 한국의 선박수주를
견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있다고 보면된다.

조선협정이 갖고있는 덤핑수주 제어수단은 과징금부과의 수주제한.덤핑수주
혐의가 있을 경우 협약가맹국들은 피해가격제도(IPI)에 따라 당사국
조선업체를 반덤핑으로 제소하게 된다.

"덤핑"판정이 떨어지면 수주금액의 20%를 1백80일안에 제소국정부에
과징금으로 내야한다.

그것도 현금으로.GATT(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채택하고 있는
반덤핑관세부과보다 훨씬 무거운 제재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게다가 여기에는 "조사국에 대한 선박수출제한"이 따라붙는다.

그기간은 최장 4년.한번 제소를 당하면 선박수주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는 미국 영국 일본등 이 협약가입국으로부터 수출선의 40%이상을
수주하고있다.

이런 점에서 볼때 조선업계가 조선협정의 발효를 앞두고 추위에 떠는 것도
결코 엄살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불황보다도 국제적 감시가 더 무섭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조선협정"의 격랑을 이겨내기 위해 국내업계는 어떤
"방탄선"을 지어야하나.

답은 간단하다.

기술경쟁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 적정가격으로 수주하는 것외에는
대안이 없다.

국내업체들이 조선공업협회의 "국제정보위원회"를 중심으로 원가작성기준의
제정에 나선 것도 조선협정에 대한 대비책의 하나다.

선박 수주가격의 적정여부에 대한 시비가 일어날 경우 제시할 수있는
"모범답안"을 만드는게 이 작업이다.

물론 이는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국제무대에 명함을 내밀기위해서는 이제 덤핑을 하지 않고 우수한 선박을
비싸게 파는 제값받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현대중공업 조충휘전무)
제값받기는 업계도 환영하는 일이다.

품질 좋은 선박을 제때 인도해 5~10%의 프리미엄까지 받을 수 있다면
만사 "OK"다.

"조선"을 북돋우기 위해 기계 중장비등 다른 사업부문을 강화하는
"구조개선"도 촉구되고 있다.

조선의 비중을 낮춰 조선시장의 여건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체제를 구축하자는 것.환경설비 로봇사업등을 강화해 조선전업도를 8%대로
낮춘 미쓰비시중공업이 사례가 좋은 예다.

현대중공업처럼 조선전업도가 50%를 넘어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선박금융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신조선수주의 성패는 조선소가 얼마나 유리한 금융조건을 제공하느냐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현대종합금융을 통한 "하우스뱅킹(그룹내에서
금융서비스지원을 하는 것)"으로 건조자금을 융통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조선협정이 앉아서 손해만보는 "마이너스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할 때다.

공정한 경쟁의 룰을 활용해 질의 경쟁을 재촉하는 것. 이것이 최상의
해법이다.

<심상민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