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최대의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정보통신".

이 분야 산업에 M&A(기업 인수.합병)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멀티미디어"와 "정보통신"이 갖는 "첨단기술" "복합적 제품" 특성이 기업
경영에서 M&A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업계의 M&A는 지난해말 해태그룹이 국내의 대표적인 AV(오디오
비디오)전문업체인 인켈을 인수하면서 불을 댕겼다.

이후 올들어 이 분야의 M&A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솔그룹은 올해 전자부품업체인 한국마벨, 모뎀제조회사인 한화통신,
멀티미디어 전문기업인 옥소리등 3개 업체를 잇달아 사들였다.

해태그룹 역시 작년 인켈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 통신단말기 생산업체인
나우정밀을 추가로 매입했다.

정보통신 전문업체인 한창은 PC(개인용 컴퓨터)통신 전문업체인 나우콤을
인수했다.

통신망 전문업체인 성미전자는 동원산업에 매각됐다.

거평은 반도체 조립업체인 한국시그네틱스를 인수했다.

올들어 9월말 까지 국내기업간 M&A 16건중 7건이 멀티미디어.정보통신
업계에서 발생했다.

M&A가 멀티미디어.정보통신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멀티미디어.정보통신분야의 "기업결합"이 이처럼 활발한 이유는 이 산업
자체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멀티미디어.정보통신은 가전 컴퓨터 통신등 3대 분야의 복합화를 전제로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첨단.고기술을 요구하고 변화속도도 빠르다.

"남들보다 3개월 먼저 제품을 내놓으면 떼 돈을 벌지만 3개월 늦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이 분야 사업이다"(옥소리 김범훈사장).

그래서 이 분야에 새로 참여하려는 기업으로선 무엇보다 신규참여의 위험을
없애면서 곧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지름길"이 필요하다.

기업을 "파는" 쪽은 급변하는 시장상황에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자본의 우산"이 아쉽다.

결국 사고 파는 회사들이 "기술과 자본의 결합"이라는 접점을 찾아 내
제휴하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한솔과 해태의 기업인수가 그런 성격이다.

M&A의 목표를 기업의 경영권 획득에 두기 보다는 사고 파는 측이 사업
확장을 위해 "기술과 자본의 제휴"에 무게를 실은 경우다.

이는 파는 쪽에서 먼저 기업을 "매물"로 내놨다는 데서 잘 나타난다.

한솔은 옥소리나 한화통신으로 부터 인수를 먼저 제의받았다.

해태가 사들이 인켈이나 나우정밀도 마찬가지다.

한솔이나 해태는 사들인 기업의 경영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독립경영"을
보장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 인수되기를 희망하는 전문업체가 늘고 있다는 것은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옥소리는 일본 소니사로 부터 기술로열티를 받고 있을 정도다.

한화통신은 국내 노트북용 모뎀시장을 1백% 석권하고 있다.

이런 업체들이 "자기매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사업을 확대하겠다
고 나선 것은 기술 전문업체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3개월 짜리 어음을 받으며 사업하는데 지쳤다. 자금걱정 안하고 기술개발
을 하고 싶었다"(한화통신 강경석사장).

기술보다는 자금이 사업의 사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적 기업환경이
M&A를 촉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업체들이 사업전략의 일환으로 M&A를 실시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창 주가가 뛸 때 회사를 팔아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자본금 18억원의 한화정보통신이 36억원에 매각된 것이 대표적 예다.

지난 91년 이후 연간 1백%이상 매출 성장을 계속하던 옥소리가 남의 회사로
간판을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 있다.

멀티미디어.정보통신 업계에 불고 있는 M&A바람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미래의 기간산업으로 꼽히는 이 분야에 대기업 그룹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래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국내 업체간 "기술과 자본의 전략적 제휴"는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