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8월28일은 미국 금융사에 기록될 중요한 날이다.

이날 케미컬뱅킹과 체이스맨해튼은 합병계획을 발표했다.

두 은행은 합병을 통해 시티코프를 제치고 미국최대은행으로 부상하게
됐다.

합병에 따른 주식교환금액은 약1백억달러.

은행합병으로는 미국역사상 최대규모이다.

두 은행이 합병을 발표하던 날 클리블랜드의 지방은행인 내셔널시티는
피츠버그의 인테그라파이낸셜을 21억달러에, 댈라스의 퍼스트내션와이드는
저축금융기관인 샌프란시스코페더럴S&L을 2억5천만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

단 하루에 크고작은 은행 인수.합병(M&A)이 3건이나 발표된 것이다.

미금융계로서는 올해가 M&A의 해이다.

올들어 8월말까지 발표된 은행 M&A는 2백77건, 금액으론 3백72억달러.

가장 M&A가 활발했던 91년의 2백40억달러보다 많다.

역대 10대 M&A 가운데 5건이 올해 발표됐다.

특히 5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M&A 3건은 모두 지난 석달새에 발표됐다.

6월에는 자산규모상 미국 9위인 퍼스트유니온이 25위 은행 퍼스트피델리티
를, 7월에는 10위 은행인 퍼스트시카고가 18위 은행인 디트로이트의 NBD
밴코프를 각각 인수키로 했다.

8월말엔 케미컬뱅킹과 체이스맨해튼의 합병계획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10위권 은행들의 순위가 모두 바뀌었다.

올들어 M&A가 활발한 것은 한마디로 규제가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간 업무규제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금년 9월부터 은행지주회사들
이 타주의 은행을 매입할수 있게 됐고 97년부터는 본거지가 아닌 타주에도
지점을 개설할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은행.증권 겸업을 허용하는 법안과 은행의 보험업 진출을 허용하는
법안 등이 의회에 상정돼 있다.

지역별.영역별 장벽이 제거되는 것을 계기로 은행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향이 당분간 지속돼 현재 1만여개인 은행이 2000년께엔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M&A로 인해 미국 은행들의 덩치가 커지고 있지만 대형화가 주요 목표는
아니다.

은행의 경우 대형화의 첫번째 잇점은 정보기술(IT)투자에 필요한 재원조달
이 쉬워진다는 점이다.

고객들이 집에 앉아서 거래하는 홈뱅킹시대를 실현하려면 많은 돈을 투자
해야 한다.

하지만 80년대말과 90년대초의 어려운 시기를 간신히 벗어난 소형 은행들
로서는 투자여력이 없다.

대형 은행들도 투자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우는게 유리하다.

은행들이 합병에 나서는 또다른 속셈은 합병과정에서 중복되는 지점을
과감히 폐쇄하고 인원을 줄임으로써 경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케미컬뱅킹과 체이스맨해튼측은 합병을 계기로 1백개의 지점을 폐쇄하고
7만5천명 가운데 16%인 1만2천명을 감원함으로써 3년이내에 연간 15억달러의
경비절감 효과를 거두겠다고 밝혔다.

지방은행들의 M&A는 주간영업규제 해제를 계기로 본거지를 중심으로 견고한
아성을 쌓기 위한 것이다.

퍼스트유니온의 경우 퍼스트피델리티를 인수.합병함으로써 영업지역을
8개주에서 동남부 13개주로 확대했다.

피츠버그의 PNC뱅크는 미드랜틱을 인수, 필라델피아와 뉴저지 북부로 진출
하게 됐다.

합병을 통해 사업영역 확대를 꾀하기도 하지만 주력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경우가 더 많다.

같은 맥락에서 비주력부문을 매각하기도 한다.

케미컬뱅킹과 체이스맨해튼의 합병은 주력분야인 기업금융.소비자금융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크다.

현재까지는 미국 2위 은행인 뱅크아메리카는 비주력분야인 증권관련부문을
축소하기 위해 지난 4월 커스터디(자산관리)부문을 뱅크오브뉴욕에, 8월에는
모기지(주택담보증권)부문을 뱅커스트러스트에 매각했다.

미국의 많은 은행들은 지금 "인수하느냐, 아니면 인수당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