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뉴욕 현지취재 -

파생상품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에 나온 상품들은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흔든다.

고도의 고등수학이 동원돼 전문수학자가 아니면 알수 없는 내용의
상품들도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개의 통화선물인데 내용은 5~6개의 통화로 연결된 것도
있다.

이런 상품의 경우엔 고객은 물론 이 상품을 파는 사람조차 상품구조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프루덴셜 글로벌 펀딩사 마케팅부장 에드먼드 김)
최근에는 전력수요의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게될 전기파생상품
이 선을 보였는가 하면 국가에 납부할 세금에 대해서까지 세율 변동을
헤지할 수 있도록 고안된 상품이 나왔다.

어려워지는 만큼이나 이름도 유별나다.

"넉인(KNOCK-IN) 옵션"이 팔리는 한편에선 "넉 아웃 옵션"도 장외시장에서
단골고객들이 많다.

"넉 아웃" 옵션은 말그대로 손실을 보는 쪽은 투자자금을 완전히 날리게
되도록(넉아웃) 계산된 상품이다.

노골적인 투기상품이다.

이색적인 면모로 따진다면 거래소 내에서 거래되는, 소위표준화된
장내상품들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스모그(오염) 선물에 이어 비료 재해보험 고철선물이 선보이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도록 설계된 인플레 옵션도 미선물거래
위원회(CFTC)의 인가를 오래전(87년6월)에 받아놓은 상태이다.

물론 이런 상품들을 고안하는 사람들도 더이상 전통적인 파이낸스
전공자만이 아니다.

로켓사이언티스트라 불리는 수리학자들이 최근엔 금융전공자들을 몰아내고
선물시장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특히 냉전이 와해된 이후 대규모 인원 감축바람이 불면서 NASA등에서
근무하던 일급과학자들이 무더기로 월가로 밀고들어오고 있다.

난해해야 돈을 번다는 생각이 급기야 교수를 시장으로 불러내고
노벨경제학상 후보자까지도 파생상품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스탠퍼드대의 마이런 숄즈교수가 헤지펀드인 "롱타임 캐피털 매니지먼트"로
옮겨간 것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그는 지난 73년 동료인 피셔 블랙과 함께 "블랙 숄즈 옵션 평가 모델"을
만들어내 재무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은 "파이낸스 엔지니어". 하지만 이들이
공들여 만들어낸 복잡한 상품구조는 사고가 터질 경우를 제외하고는 극히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진다.

장외시장에서의 파생상품거래는 기본적으로 2명만 있으면 이뤄진다.

"OTC(장외거래)상품에 규제는 없다.

투자자의 요구가 있으면 즉석에서라도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 거래를 원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든다" (DLJ 솝티박사) 헤지목적이든
투기목적이든 수요자가 있고 상품(대개 고객주문형)을 파는 쪽이 있으면
거래가 성립된다.

때문에 부르는게 값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트레이더 한사람이 마켓이
되기도 한다.

"많이 거래되는 스와프는 스크린에 값이 나오지만 복잡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어느정도 객관적인 기준이 적용되지만 끝에 가서는 트레이더가 프라이싱
(가격결정) 하는대로 된다"(에드먼드 김) OTC 파생금융상품이 점점 복잡한
구조를 띠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위해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상품은 자꾸만 탄생한다.

지난91년까지만해도 헤지수요가 대부분이던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투기적
성격이 더해진 또하나의 이유는 92년이후 이자수준이 크게 떨어졌던 것도
작용했다.

당시 이자율은 3~4%."운용하는 사람들이 수익률을 고양하기위해 이상한
짓을 많이 했습니다"(호라이존 선물사장 진금) 특히 이같은 난해한
파생상품의 등장에는 기존의 상품으로는 영업이 안되는 금융업계의
환경변화도 한몫을 했다.

지난33년의 글래스티걸법이 사실상 무력해진 지금 은행등 금융기관들은
더이상 예금장사(본연의 업무)만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은행들이 앞다투어 증권업무에 뛰어들고 있다.

지금은 30~40여건의 송사에 휘말려 제정신이 아니지만 뱅커스트러스트은행
(BTC)은 주업무보다 데리버티브스 장사를 통해 성장세를 이어왔다.

BTC는 무려 1만여건의 거래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은행으로부터 "레버리지 금리 스와프"를 사들였던 프록터&갬블사및
깁슨스 그리팅스사의 지난해 피해규모가 각각 1억5천만달러와 7천3백만달러
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은행"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러다보니 "선물의 본질은 위험을 전가하자는 것이다"는 지적은 고전이
돼버렸다.

(뉴욕소재 딘위터증권의 카사키언 이사) 예를들어 사진제조업체인 코닥은
흑백필름을 만들기위해 사들이는 은의 가격변동위험에 대해 예전부터
헤지거래를 해왔다.

프랑스 화학기업인 폴랭사도 환율변동위험을 감소시키기위해 외환선도
계약과 옵션을 이용해왔지만 점차 투기에 빠져들고 있다.

자본시장이 국제화되고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진보를 거듭할수록 이같은
파생상품거래는 더 촉진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파생상품시장은 더 커져 갈것"(로버트
오브라이언 전CME회장)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규재/이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