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카고/뉴욕 현지취재-

베어링 사건은 전세계 금융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선물회사들은 물론이고 증권사 은행 보험사등 기관투자가들과 감독기관들도
베어링의 해법을 찾기위해 95년 한해를 분주히 보냈다.

업자들은 업자대로 감독당국은 또 그들대로 이같은 사고의 예방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발빠른 노력은 역시 미국의 업자들에게서 나왔다.

베어링 사건이 터지자 미국 선물업자협회(FIA)는 즉각 선물거래소
선물협회등과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일련의 선물투자손실사례에 관한
보고서를 냈다.

물론 정부당국등 외부로부터의 규제를 피해보자는 계산도 깔려있다.

미국의 선물 거래소들은 특히 "각국이 미국수준의 규제기준을 확보한다면
제2의 베어링 사태는 막을수 있다"(잭샌드너 CME회장)며 기세를 올렸다.

잭샌드너 회장은 베어링 사태의 전모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7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내고 전세계 거래소들이 시카고상업거래소(CME)수준의 규제기준을
마련할것을 촉구해 미국시장의 안전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과시했다.

감독당국들도 바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5월엔 영국의 윈저에서 16개국 선물및 증권 감독당국자들이 긴급
모임을 갖고 위기관리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윈저 선언에는 감독당국자들의 국가간 공조활동 강화, 투자펀드 보호방안
강구, 결제불이행시의 처리절차, 긴급상황하에서의 공동대처등 4개항이
포함됐다.

윈저 선언은 곧이어 7월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증권당국자회의(IOSCO)로
인계됐다.

우리나라의 백원구 증권감독원장도 참가한 이 회의에는 71개국 6백50명의
증권당국자들이 참석해 선물시장 위험관리가 발등의 불임을 재인식케했다.

이회의에는 미국의 선물위원회등 선물규제당국도 함께 참가해 머리를
맞댔다.

선물 감독 당국과 증권감독 당국은 금융선물 상품이 생긴이래로 서로가
주도권을 차지하기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여왔었다.

그러나 위기관리라는 공통의 주제 앞에서 주도권 다툼은 제2의 주제일
뿐이었다.

IOSCO전문위원회는 G7국가 지도자 회의에 선물투자와 관련된 국제적
규제방안에 관해 보고서를 보내기로 했다.

감독당국의 국제적 공조노력은 상당한 수준까지 구체화되고 있다.

이미 은행 증권 보험당국자들의 모임인 "3자 위원회"가 구성돼
공식기구화를 서두르고 있다.

3자위원회는 지난 7월 한달간 전문위원회를 열어 앞으로 전세계
금융감독당국을 통괄하는 위원회를 설립키로 의견을 모아놓고 있다.

선물투자가 금융 영역간 장벽을 무너뜨리고 국경마저 쉽게 돌파하고
있는 상황이 심화되면서 감독당국의 국제적인 협력도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러나 감독당국들 보다는 역시 선물업자들과 거래소들이 더 바빠졌다.

거래소들은 감찰활동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선물회사들도
내부통제 시스팀 구축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메릴린치증권은 베어링사태 이후 전세계 시장들에 대한 신용조사를
다시 실시했고 채이스맨해튼은행은 전세계 주요 거점에 위험관리 전담인력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마이클 필립 메릴린치감사부장은 "최근 국가별 거래소별 투자 포지션을
정하고 전세계 투자계좌들의 잔고를 매일매일 파악해 본사에 보고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강조했다.

메릴린치사는 또 뉴욕 도쿄 런던에 신용관리만 전담하는 별도의 부서를
전진 배치해 위험관리분야에서 여타 선물회사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메릴린치는 이미 오렌지카운티 사건등에서 한차례 홍역을 치른바 있어
내부관리에도 그만큼 민감해져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베어스턴즈 증권사는 사내 경찰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사내경찰제도는 4,5명의 트래이더들을 대상으로 1명씩의 감시 전문인력이
배치돼 위험포지션이 일정수준이상 확대되면 즉각 강제적으로 반대매매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이회사의 트래이더들은 트래이딩 룸뒤편에 일렬로 자리잡고있는
감리담당자들을 "말그대로"경찰이라고 불렀다.

"한번 불려가면 고객과의 관계,이상매매 흔적,특정한 투자선택의 이유등에
대해 철저한 질문을 받게된다"고 이회사 아시아 담당 트래이더 척 명씨는
말했다.

거래소와 규제당국들도 한층 엄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는 가격감시부 인력을 증원해 1백40명을 배치하고
있고(데이빗 프로스페리 CBOT 이사) 시카고 상업거래소는 대량거래
보고제도를 도입해 전체 거래의 80%정도를 거래주체별로 파악해 이상매매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제럴드 바이어 CME부사장) 선물위원회(CFTC)는 최근 MG선물사에 대해
공시서류 미제출등을 이유로 역대최고금액인 2백25만달러의 벌금을
물리기도했다.

그러나 거래소들과 선물업자 그리고 감독당국이 규제를 보는 시각은
상반되어 있다.

감독당국들의 규제강화 움직임에 대해 거래소와 업자들의 반발은
노골적인 편이다.

제럴드 바이어 부사장 같은 사람은 "선물시장은 당초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시장의 유동성을 줄이고 거래를 둔화시키는 규제는 절대 반대"라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시장관계자들은 특히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당국의 규제가
없는 장외시장으로 자금이 역류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며 일말의
불안감마저 드러내고 있다.

실제 이같은 현상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미국내 업자들 중에도 바하마나 건지(런던 인근의 요프쇼 지역)등 규제가
없는 역외지역을 자금베이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국자들의 규제노력과 업자들의 자율규제 주장이 숨바꼭질을 계속하고
있다는 설명들이다.

선물회사 관계자들은 언론이 지나치게 선물의 위험을 과장 보도한다며
오렌지 카운티등 대부분의 선물사건은 게임에서 패한 자들의 불평(루저스
컴플레인)일 뿐이라는 지적과 함께 규제는 필요없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정규재/이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