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수출하는 냉장고는 가급적 소형으로" "조선족이 많은 연변지역엔
노래방 기능을 겸비한 전자제품을"..

가전사들이 각 지역에 맞는 특화된 제품으로 수출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른바 "지역만족형"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뚫는 것.

70년대 수출이 "알래스카에 에어컨을, 중동지역에 온풍기를 파는"식의
저돌적인 마케팅이었다면 90년대의 수출 마케팅은 훨씬 세련돼 있다.

각 지역의 기후는 물론 소비자취향 국민성 범죄발생빈도및 성향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고려하는 "전방위 마케팅"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형 냉장고와 세탁기를 개발해 현지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본의 가옥구조가 좁고 일본인들이 음식을 구분해 보관하는 습관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소형의 서랍식 4도어 냉장고를 개발한 것.

또 일본의 수도료가 비싼 점을 감안해 전자동의 절수형 세탁기도 개발했다.

중국에 수출하는 TV나 VTR등 각종 전자 제품엔 노래방기능을 내장시켰다.

중국인들이 노래를 즐기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중남미 지역에 수출하는 VTR에 정전보상시스템을 기본스펙으로
장착하고 있다.

110V에서 240V사이의 전압이면 자동으로 적응할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이다.

중남미지역의 전압이 고르지 못하다는 점에 착안해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엔 밑바닥에 부저를 부착해 들면 경고음이 나는 "도난
방지 VTR"이 인기제품이다.

절도범이 판을 치는 지역적 특성(?)에 기초한 상품이다.

대우전자의 수출형세탁기는 유럽 미주 아시아지역으로 3분돼 있다.

미국은 애지테이터(봉)세탁기를, 유럽은 드럼식을, 아주지역은 펄세이터
(회전판)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지역은 수도료가 비싼 점을 감안해 물사용량을 40% 줄인 그린
코스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흐린 날씨가 많은 유럽의 기후를 감안해 건조기능까지 일체형으로 갖추도록
설계된 세탁기도 "유럽형" 상품.

대우전자는 또 "상냉장 하냉동"의 "남미형" 냉장고를 개발, 올해말부터
수출에 들어갈 계획이다.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서 "5백리터급 대형 냉장고"와 냉동실만 있는
"냉동고"도 개발해 놓고 있다.

가전업체들이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표준 한국형"제품을 그대로
해외에 실어냈다가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작년초 국내 A사가 동유럽지역에 세탁기를 2만여대 수출했다가 낭패를
본것이 대표적인 예.

처음엔 세탁력이 우수하다는 점이 부각돼 날개돋힌 듯 팔렸다.

그러나 물에 석회성분이 많으면 찬물로 세탁할 경우 석회석이 응고된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곧 일본등 현지 경쟁사들의 흑색 선전이 이어졌고 잘팔리던 "효자상품"은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수출 기획단계에서 유럽지역 특성을 면밀히 고려하지 못한데 따른 실패작"
(A사 상품기획팀장)이었던 셈이다.

수출형 제품을 위해서 전담팀을 구성하는 회사도 있다.

LG전자는 미국시장 개척을 위해 "N프로젝트팀"을 구성했다.

현지화된 디자인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대우전자는 각 수출팀과 현지 판매법인등을 통해 취합한 정보를 상품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정확한 현지정보와 본사의 상품개발력이 결합돼야만 히트상품이 나올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수출형 제품을 위해 상품기획팀을 두고 있다.

이 팀에선 최근 중국지역 수출을 위해 PAL방식(유럽형)과 NTSC방식(미국형)
을 같이 쓸수 있는 겸용 VTR제품을 기획했다.

중국엔 세계 각지로부터 들어오는 밀수테이프가 많아 한 방식만으로는
효용이 떨어지기 때문.

"도어마다 열쇠가 달린" 남미형 냉장고도 이 팀의 작품.

남미지역의 경우 한집에 여러가구가 사는 "다가구"주택이 많아 냉장고
사용에도 불편이 따른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같은 수출형 제품개발은 가전사들의 수출시장이 다변화되면서 더욱
고도화되는 추세다.

수출지역이 다르면 수출제품의 색상까지도 다르다.

지역과 국민성에 따라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지사정에 정통한 기업만이 지역특화상품을 개발해낼 수 있다.

지역별 히트상품 유무는 곧 기업의 세계화 정도를 재는 잣대로도 이어진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