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는 금권을 바탕으로한 계보정치가 보편적이었던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있다.

기업으로부터의 정치자금유입이 일정부분 차단됨으로써 정치인들은
새로운 정치자금조달방법을 찾아 나설수 밖에 없게된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초기에는 당비인상이나 국고보조금의 확대를 통한
정치자금의 확보나 세비인상을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돈안드는 정치구현"이라는 큰 방향에 어긋날
뿐 아니라 여론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액수상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후원회를 통한 자금의 조달이 가장 보편적인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되었다.

노태우 전두환전대통령의 5.6공시절 여당의원의 경우 당총재로부터
매년 수천만원의 촌지를 받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 지역구출신의 경우 매월 수천만원의 지역구 운영비를 지원받았고
여기에다 "가져다 주는 돈"이 있어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이 매달받는
"세비"나 주머니돈을 쓰지않고 의정활동을 해왔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정치자금의 근절을 선언하고 업친데 덥친격으로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정치권은 새로운 자금창구를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됐다고해서 정치권이 완벽하게 투명한 돈으로만
운영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공식 후원회를 통해 지원하는 인사도 있겠지만 남에게 노출되기를
꺼리는 지지자나 친구 친인척등이 예전처럼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경우는 많다.

이들이 지원하는 자금중 일부는 세금을 내지 않는 소위 "검은 돈"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거액의 정치자금이 그것이 검은돈이든 아니든 간에 쉽게
정치권으로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정치인 스스로도 그런 위험부담을 회피할 것이며 기업도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들로서는 앞에서 지적한 개인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조성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어가고있다.

현재 선관위에 등록된 국회의원들의 후원회는 올해 6월말 현재
지역구의원 2백2개,전국구의원 27개이다.

지구당후원회로 등록된 것도 1백44개에 이르고있다.

개인후원회의 경우 현재 정치자금법상 1년에 최고 1억5천만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정치자금을 조달할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후원회가 의원들에게 제공하는 금전적 기여는 여와야에 따라
다르고 의원 개개인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

민자당의원중 일부 중량급인사들은 후원회를 통해 필요한 돈의
거의 전부나 그 이상을 기부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의원들은 후원회를 통한 정치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후원회의 성공여부는 계보정치라는 우리 정치행태를 바꿀수
있는 단초가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정치인들이 자금을 대던 소수의 사람들을 대변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제 목소리를 갖고 의정활동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위해서는 국민들이 정치를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이 국민에대한 신뢰를 회복해야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지난 6.27선거에서 보듯이 자원봉사자가 과거의 선거운동원과 다를바
없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아직 우리 정치풍토가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있다.

여야는 금융실명제의 실시에 따른 "어려운 입장"을 공유하고있다.

나아가 "돈안드는 정치의 실현"에 대해서도 그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인정하고있다.

정치권은 그동안 금융실명제의 실시에 맞춰 정치관련 법안들을
개정해왔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비록 우리 정치권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금융실명제의
실시로 제도 관행에 있어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