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현장의 변화는 경영진의 의식개혁에서 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로자를 종속개념에서 바라보던 경영자들은 이제 이들을 협력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고
있다.

경영자들은 관리자란 낡은 권위주의를 떨쳐버리고 현장에 내려가 근로자들
과 함께 땀을 흘리며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이른바 현장체험을 실행하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젖어있는 근로자들을 한가족처럼 대함으로써 상호불신의
벽을 허물고 생산적 노사관계 창출에 온 정열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영진의 의식변화는 근로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산업현장은 대립
에서 공존의 구도로 빠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경북달성 대우기전의 박기영사장은 지난해 새로 취임하면서 인간존중경영을
내걸고 현장에서 근로자들과의 접촉기회를 늘리고 있다.

전에는 일주일에 2~3일 정도 서울본사에 올라가서 업무를 보고 나머지
3~4일은 현장에서 근무했으나 최근들어서는 2주일에 한번씩만 서울에
올라가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달성공장에서 보내고 있다.

근로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함으로써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또 올들어 22차에 걸쳐 실시된 현장사원교육에도 거의 참석해 근로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후 일일이 답변을 해주었다.

근로자들의 복지제도를 적극 개선하는 성의도 보였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이회사는 87년이후 계속 되풀이돼온 파업의 악순환을
떨쳐 버리고 8년만에 처음으로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구미공단에서 건축용 도기를 전문으로 생산하고 있는 계림동도는 89년
60일동안의 장기간 악성 노사분규에 휘말려 엄청난 매출손실을 입었던
회사이다.

근로자들의 무리한 요구도 일부 작용했지만 더큰 요인은 회사측이 근로자를
무시하고 적대관계로 상대한데 있었다.

회사측은 이같은 점을 깨닫고 조합원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섰다.

서보철사장은 종업원들의 의견을 반영할수 있는 창구를 개설, 일일이
조합원들의 불만을 수렴하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 경영상의 문제점도
일일이 점검했다.

또 노조가 강력히 주장해온 전임자문제를 해결하는등 노사관계를 전향적
으로 개선해 나갔다.

이회사는 그이후 단한번의 노사분규도 겪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이직률도 크게 줄어들었다.

노조위원장 또한 89년이후 조합원들의 신임을 계속 얻으며 원만한 노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의 끈질긴 "노조 끌어안기" 노력이 노사관계를 변화시킨 것이다.

올해 무분규로 임금교섭을 타결한 현대정공 창원공장의 전갑주노조위원장도
"공장장이나 관리직간부들이 근로자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 인간적인
유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이같은 노력이 노사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식변화는 올해 임금협상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회사측은 그동안 임금협상때만 되면 마치 세일하듯 임금인상안을 조금씩
조금씩 높여갔으나 올들어서는 대부분사업장이 노조가 수긍할만한 인상안을
단번에 제시, 협상을 손쉽게 만들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회사측은 올해 임금협상때 첫 임금인상안을 그동안
저율의 인상률로 내놓던 관행을 깨고 통상급대비 7.7%로 제시, 노조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노조는 이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올해 처음으로 무분규란 대기록을 세웠다.

이회사의 김남석노조부위원장은 "이번 임금협상에서 회사측이 보여준
태도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며 "조합원들도 노사화합을 위한 회사측의
의지와 노력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현총련소속 사업장 한국프랜지도 회사측이 1차안으로 제시한 5.6%의
인상률로 올해 임금인상안을 확정했다.

현대미포조선, 현대강관등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노조의 노동운동이 경제조합주의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자들도 의식개혁을 통한 노조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의 김화겸노사조정과장은 "그동안 여러차례의 분규를 겪으면서
경영자들도 기존의 관습이나 사고로는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할수 없다는
점을 절감, 협상관행과 근로자에 대한 시각을 전환한 것같다"고 분석했다.

< 윤기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