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한항공 김해공장에는 미국 맥도널 더글라스(MD)사 부사장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업무협의차 이 공장을 다녀간 직후였다.

용건은 김해공장라인을 찍은 사진과 생산관리혁신에 관한 프로그램을
받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전화에서 "잘 정돈된 생산라인에 감명을 받았다"며 MD공장의 생산
시스템개선에 참고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세계 굴지의 항공기회사가 체면불구하고 김해공장을 "벤치 마킹( bench
marking =본을 받을 대상으로 삼아 기법등을 전수받는 것)"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MD의 군침을 흘리게 한 "김해모델"의 요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주어진 공간을 절약해 최대한 활용하는 "공테크".

그 시범현장은 무려 7천여평이나 되는 격납고가 붙어있는 제1 정비공장.

이곳에 들어서면 정기점검을 받기 위해 동체부터 꼬리날개 부분까지
해체된채 서있는 에어버스기가 눈에 들어온다.

대형비행기 한대가 공장을 꽉 채운 느낌이다.

그러나 자세히 둘러보면 물빛 페인트칠로 통일한 기계 바닥 벽면과
노란색으로 깔끔하게 칠한 공구세트, 보조장비 로봇등이 잘 어울려 배치돼
있다.

대형공장특유의 "산만함"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이 공장의 장강태공장개선팀장은 깨끗한 공장의 비결은 바로 "골든
스페이스( golden space )"에 있다고 귀띔해준다.

골든 스페이스란 작업공간을 근로자들이 일하기 쉽고 편리하게끔 수시로
전면 재조정하는 것.

비행기에 들어가는 수십만가지 부품들중 상당수를 직접 만들고 있는 이
공장에는 부품을 만드는 공구인 치공구만 하더라도 1만3천여종에 이른다.

치공구란 비행기부품을 깎거나 다듬어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종의
주물틀.

치공구와 부품수가 수만가지를 넘어가는 공장의 특성상 작업공간을 효율적
으로 개조시키는 것은 오랜 과제였다.

"정비부품들을 시간 동작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한 정렬형태로만
놓았을때는 물품 한가지를 찾기는 쉬웠지만 작업과정에서 이것 저것 찾는데
시간낭비가 심했다.

개선후 워크 카드별로 분류한 결과 카드 하나만 가지고도 작업을 할 수
있게돼 물품을 찾기 위한 시간을 거의 제로로 만들었다"(자주관리반 김원호
잠자리그룹장)

장공장개선팀장은 "지난해 창립 25주년을 맞아 21세기 초일류공장을
만들자는 공장비전운동을 시작했다. 우선 장비와 공구들을 새롭게 배치해
봤다. 동작과 공정의 낭비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돈을 들이는 설비자동화
보다는 당장 작업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간개조에 더욱 신경을 썼다"고
설명한다.

골든 스페이스 만들기의 두 바퀴는 "제안운동"과 "자주검사"다.

지난해 1인당 4.6건을 기록했던 제안건수는 올해들어 벌써 5건을 넘어섰다.

자주검사에 대한 참여도 활발하다.

과거 전직원의 10%선(2백여명)에 달했던 전담검사요원들은 현재 4%선으로
줄어들었다.

검사활동이 속속 현장작업자로의 "자율"로 이관된 것.

절대안전이 요구되는 비행기를 만드는 공장으로서 불량제품이 나올수 있는
산만한 공간을 혁신하자는 골든스페이스운동.

대한항공 김해공장 사람들은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바꿔놓는다는
"마이더스의 손"을 꿈꾸며 완전무결한 품질을 창조하는데 도전하고 있다.

< 부산=심상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