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노조에 대해 정부가 전례없는 초강수를 두고 있는 것은
국가전반의 통신망을 운용.관리하고 있는 한국통신의 역할이 그만큼
중대하고 만에 하나 파업의 국면으로 치달을 경우 그 여파와 국가적인
손실이 계량할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국통신 노조가 19일 광주 전남대 집회에서 쟁의발생결의를 당분간
유보했으나 유덕상노조위원장이 18일 기자회견에서 "파업불사"를
선언한 만큼 파업강행에 따른 "통신대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 것 같다.

한국통신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국가의 신경이라고도 할수 있는
통신망의 일부마비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한 국가전반과 국민생활에의
악영향은 일일이 예시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파업에 따른 피해와는 그 성격이 다르지만 지난해 3월 서울 종로5가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일반가입자의 전화는 물론 은행
기업등의 업무가 일시에 마비됨으로써 엄청난 혼란과 "통신암흑"을
겪어야 했던 경험에서 대략 그 여파를 짐작할수 있다.

그 만큼 통신시설의 중요성이 크고 게다가 한국통신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통신시설을 독점 관리하고 있어 파업으로 인해 통신망이
마비되는 사태가 온다면 곧 "국가비상사태"와 다름아닌 것이다.

물론 회사측은 노조가 설사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시설물에 대한
고의 훼손행위만 없다면 곧바로 통신망의 마비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통신교환기 선로등 설비의 대부분이 자동화되어 있고 통신설비운용경험이
풍부한 간부들이나 퇴직사원들을 긴급동원함으로써 당분간 통신망의
정상적인 운영을 지원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통신시설은 정상운영에 필요한 부품교체등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고 또 평상시에도 부분적인 설비고장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사정은 달라질수 밖에 없다.

일상적인 설비의 정비보수가 어려워져 기업의 전용회선등 일부 통신망이
이용이 불가능해지거나 제한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114전화안내업무나 신규전화가입자에 대한 서비스 전화고장수리업무도
사실상 계속되기 어려워져 국민생활의 불편으로 인한 혼란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이다.

한국통신 노조원은 전체직원(6만2천명)의 83%에 이르는 5만2천여명으로
이들은 대부분 유지.보수및 설비관리등을 맡고 있어 파업의 파장은
예상외로 엄청날수도 있다.

일반전화가입자와 기업의 정상적인 전화통신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팩시밀리통신,전용회선통신등도 마비될 우려를 배제할수 없고
더욱이 행정전산망등 컴퓨터시스템과 통신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국가기간망의 운용이 피해를 입는 사태도 배제할수 없다.

이 경우 국가경제에 대한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해지고 안보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은행온라인망이 마비돼 예금업무처리 송금서비스등이 중단되고 증권전산망도
마비될수 있다.

행정민원업무 무역자동화업무등도 어려워지는등 통신망의 두절은
컴퓨터로 연결된 전산망의 운용마비를 수반하게 된다.

< 추창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