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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엔고는 한국 경제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수출시장에선 엔고반사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반면 대일의존구조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전자.자동차.선박.기계등 대부분
국내 산업에 주고 있는 원가부담 압박도 간과할 수 없다.

"수출 과실따먹기"에만 급급한 것이 한국의 산업체질이었다.

80년대 후반 구엔고시절의 시행착오도 그런 체질에서 연유했다.

요즘도 신엔고라고 들떠있는 듯하다.

한국산업은 "도약이냐,좌절이냐"의 기로에 놓여있다.

주요 산업의 현주소는 어디고, 실력은 어느 수준이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주요 산업별로 시리즈를 엮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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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계에서 IBM컴퓨터까지"

현대판 연금산업이랄까, 아니면 캐시카우 비즈니스(cash-cow business.
떼돈을 벌어준다는 뜻)랄까.

재계에선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렇게 빗댄다.

반도체 산업-.이 산업이 한국의 간판산업으로 올라서기까지 걸린 기간은
그리 오래지 않다.

20년에 불과하다.

그것도 손목시계에 들어가는 조잡한 트랜지스터(저급 메모리반도체의
일종)를 조립 생산하던 D램이전 시기까지 쳐서 그렇다.

D램부터 따지면 83년이후니까 단 10년 남짓한 역사로 일궈낸 실적이다.

사실 삼성그룹이 70년대 중반 조립 생산한 트랜지스터는 그때만해도 "첨단
기술의 상징"바로 그것이었다.

이병철 당시 삼성회장은 박정희대통령에게 "첨단 기술의 상징"을 진상했다.

전자시계라는 포장물에 트랜지스터를 넣어.

박대통령은 이 시계에 자신의 이름을 박았다.

청와대를 방문한 아프리카 동남아등의 개도국 국가원수들에게 선물로
내놓았다.

한국의 기술을 뽐내는 자랑거리로.

그러나 그 자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계가 자주 탈을 일으킨 것이다.

이유는 트랜지스터의 성능불량.

자랑거리가 창피함으로 바뀌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박정희시계"건은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상전벽해로 바뀌어 있다.

한국산 반도체는 IBM 휴렛팩커드 컴팩 도시바 마쓰시타등 내로라하는
선진국의 첨단 전자업체들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돼 있다.

"반도체 테크놀로지를 드라이브한다"(젠킨스 미텍사스 인스트루먼츠회장)는
D램에 관한 한 적어도 그렇다.

세계 제일에 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런 비화인지 비화인지가 수두룩
하다.

그 비화들이 오늘의 반도체 한국을 낳은 밑거름이 됐다.

밑거름이 피워낸 꽃은 바로 세계시장 점유율이다.

삼성전자 LG반도체 현대전자등 국내 3사의 94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27.9%(미데이터 퀘스트 조사기준)였다.

물론 이같은 실적은 히타치 NEC 도시바 미쓰비시등 일본 4사의 36.6%(94년
기준)에는 못미친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의 점유율이 낮아진데 반해 한국업체는 우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치로 보면 작년한해 4.3%포인트의 땅을 넓혔다.

16메가D램 시장이 본격 형성되는 내년에는 국내업계가 45%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설마"싶은 전망도 나와있다.

개별 기업만으로 보면 "코리아의 실리콘 황색돌풍"은 이미 세계 정상에
올라서 있다.

돌풍의 주역은 삼성전자.

D램분야에 얼굴을 내민지 불과 10년만에(92년) D램 세계 1위업체로 등극
했다.

그리고는 내처 3년간 그 자리를 지켜왔다.

당분간 난공불락의 수성도 무난할 전망이다.

이같은 돌풍속에서 일본의 NEC는 권불 5년으로 만족해야 했다.

거짓말같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 10년은 뒤져 있다던 D램분야에서 화려한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해 2백56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낸 것.

86년과 89년 각각 반도체 사업에 본격 뛰어든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신화만들기도 삼성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신화창조의 기간을 앞당겼다.

D램분야 세계 랭킹 10위권에 드는 "메모리 메이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 여세를 몰아 2백56메가 D램개발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생산기술에서는 세계정상으로 알려져 있다.

수율 1,2,3위를 한국의 반도체 3사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는게 세계
반도체업계의 정설이다.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오는 정품의 생산비율이 수율이다.

반도체 수율은 80%면 꽤 괜찮다고 한다.

한국업계는 이 수준을 90%까지 올려 놓고 있다는 말도 나돈다.

고기술.고생산성이 반도체3사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캐시카우"로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세전이익이 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
하면서 매출이익률이 10%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수익기반은 한국이 아직은 취약하다는 비메모리 반도체와 관련 전자
기술의 개발.습득을 촉진하는 원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확대재생산의 선순환 궤도에 접어들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때마침 몰아닥친 신엔고 호재까지 결들여지면서 반도체신화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세계 제일을 굳히면서.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