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회복이냐 아니면 안정적 성장이냐"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최근 분석한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의 딜레마다.

이 연구소는 일본 5대 반도체업체의 올해 설비투자액수가 6천억엔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기업들이 세계 반도체시장을 석권한다는 목표로 지난84년
2백56KD램에 투자했던 금액(6천1백90억엔)과 맞먹는 규모다.

물론 이 금액은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액이었다.

그러니까 노무라 연구소는 올해 일본기업의 투자가 "사상최대"가 된다는
점에서 일본기업들이 자존심 회복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볼수있다.

한국기업에 의해 "수몰"된 "반도체 일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다시 설비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라 연구소가 조사한 일본 5대 메이커의 올해 설비투자액은 <>NEC가
1천4백억엔 <>히타치와 후지쯔는 각각 1천3백억엔 <>도시바는 1천1백50억엔
<>미쓰비시전기는 8백50억엔이다.

지난 92년의 3천억엔보다는 무려 배가 늘어난 액수다.

이 돈은 대부분 한국기업들과 경쟁관계인 16메가D램과64메가D램 양산시설
구축에 들어간다.

노무라 연구소는 "올해 설비투자는 계획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후지쯔 후카가와 상무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 업체들이 다분히 한국기업들을
의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 반도체 3사의 돌진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
를 엿볼수 있다는 것.

노무라 연구소는 한국 반도체3사의 올해 설비 투자액이 5천5백억엔으로
지난해 보다 무려 52%나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업체들의 대형투자는 일본기업들을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는 얘기다.

일본 기업들이 현재와 같은 세계시장 점유율 50%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는 98년까지 16메가D램 월산 8백만개 생산체제를 갖춰야 할 것(노무라
연구소)으로 지적되고 있다.

작년 2월 기준으로 일본업체들의 16메가D램생산능력은 월산 3백30만개(일본
산업신문).

월산 5백만개의 생산라인을 신규로 설치하고 동시에 64메가D램 양산체제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설비투자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이같은 대형투자는 16메가D램부터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생산국 자리를
차지하려는 한국기업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노무라 연구소는 그러나 이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을의식한 대규모 투자는 너무나도 높은 투자위험을 동반한다는 것.

메모리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언제 경기 하락이라는 복병이 나타날지 모른다.

메모리반도체사업은 대형투자를 바탕으로 양산라인을 가동해야 하는 장치
산업이다.

경기하락으로 생산중단이라도 될 경우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다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게 노무라연구소가 지적하는 "문제의 심각성"이다.

한국기업들의 지난해 메모리반도체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은 30%에 육박해
있다.

점유율쪽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아직 앞서가지만 성장률로 볼 때는
마이너스 곡선을 타고 있다.

반면 한국업체들은 일본기업들의 시장을 잠식하며 엄청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기업이 대형투자를 감행, 한국기업을 견제하자니 엄청난 투자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대형투자를 그만 두자니 한국기업만 살찌우게 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일본업체들이 처해 있다고 노무라연구소는 지적
했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