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의 등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의 보급과 각종 시스템의 네트워크 연결이 늘어남에 따라
해커층이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PC보급대수가 이미 5백만대를 넘어섰고 PC통신 이용자만도 50만명에
이르는등 우리나라도 전문적인 해커들의 출현이 더이상 강건너 불만은
아니다.

80년대초반 국내 해커들은 주로 컴퓨터 복사 방지 장치를 푸는데
치중해왔으나 80년대 말 컴퓨터 통신망이 확산되면서 PC통신을 이용해
남의 시스템에 침입하는 시스템해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과학기술원 포항공대 서울대등의 대학을 중심으로
수백여명에 달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해커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학 전산동호회나 컴퓨터 통신망 동호회등을 통해 국내외
전산 시스템 관련 정보를 교환하거나 해킹 기법을 공유한다.

또 대학간에 연결된 전산망을 통해 해킹기법을 겨루는 대항전을
펼치기도 한다.

지난해 포항공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간에 벌어진 해킹 공중전이
대표적인 사례.

두 대학의 해커들은 학내 전산시스템과 연결된 학술 전산망을 이용해
해킹 전쟁을 벌였다.

지난 91년에 만들어진 KAIST의 해커 서클인 컴퓨터 언더서클 회원들은
과학기술원의 연구소 전산망이 해커의 공격을 받았음을 확인하고
침입자에 대한 역추적 작업을 벌였다.

접속 파일등을 조사한 결과 포항공대 해커팀의 소행임을 확인한
KAIST팀은 이번엔 역으로 포항공대 전산망을 뚫고 자신들이 다녀갔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해커들의 싸움이 두 대학의 자존심싸움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이들 해커 서클의 구성원은 전산학과를 중심으로 한 학년에 1~2명씩
10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산망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의 호스트 컴퓨터에 접속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들은 "자신들이 컴퓨터 실력을 과시하거나 장남삼아
보안시스템을 깰 뿐 자료를 홈쳐오거나 프로그램을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해킹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대학내 전자계산소 직원에게 알려줘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대학간에 해킹 겨루기는 특히 대학간 학술 전산망 연결이 활발해지면서
각 대학의 컴퓨터 관련 서클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컴퓨터 통신망은 해커들이 활동하는 또 하나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다.

최근 국내 사설 전자게시판(BBS)을 중심으로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유형의 해킹 프로그램이 대거 등록되는등 해커층이 넓어지고 있다는
징후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또 해커기법등을 담은 설명 파일들이 컴퓨터 통신망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해커들의 1차 공격대상인 개인운영 사설 BBS들이 해커의 공격을 받아
시스템을 파괴당하고 운영을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 운영되고 있는 1천여개 이상의 사설 BBS중 해커의 침입을
경험한 BBS가 20~3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들어서는 국내 컴퓨터 통신망이 인터네트와 연결됨으로써 국제적인
해커 수법이 국내에 유입되고 있다.

전화해킹를 가능케 하는 PC 소프트웨어가 인터네트를 통해 시중에
나돌기도 했으며 외국의 "사이버 인민 해방전선"등 해커들의 모임
광고가 국내 PC통신망에 게재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대형 해킹사건이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해외
해커들이 국내 주요 컴퓨터 시스템과 전산망을 그들의 활동무대로
삼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외국 해커들은 유닉스 시스템의 취약점을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보안
기능이 없는 구식 유닉스 시스템에 대한 해킹수법등이 뛰어나 이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