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자동차가 선보인 때는 1903년.고종을 위한 위로잔치
였던 칭경예식에 신하들이 올리는 선물로 자동차가 등장했다.

그차는 미국공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들여온 것으로 지붕이 없는
포드차였다.

1911년 황실과 조선총독부에서 영국제 리무진을 들여오면서 자동차보급이
본격화돼 당시 광업계 거부 박기효 대주주였던 배석환 김종석씨등이
마이카족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달리는 흉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자동차와 보험을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일본 삼정물산 경성지점이 1924년 동경해상 대리점을 시작해 자동차보험
영업을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자동차보험의 효시.벌써 70년전 일이다.

당시 국내에서 굴러다닌 자동차는 서울 2백12대등 모두 8백40대정도였다.

가입대상이 극소수인데다 손해율도 높아 곧 영업을 중단하고 만다.

4년이 지난 28년 경성대리점은 영업을 다시 시작했으나 가입실적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자동차보험 보상대상은 차체 손해와 충돌에 의한 손해배상이 주종을
이루었고 무사고차량에 대해선 낸 보험료의 일부를 되돌려 주는 상여금제도
가 있었다.

조선화재(현 동양화재의 전신)가 37년 자동차보험영업인가를 받았으며
당시 국내운수업계는 거의 폐업상태에 놓여있어 영업이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했다.

해방이후 제일 한국 안보 해동 고려화재등이 자동차보험 인가를
받았으나 시장여건이 조성되지 못한 까닭에 실제 영업은 하지 않았다.

57년 전국 자동차운송사업자들이 2억환의 자본금을 내기로 하고
자동차보험전업회사인 한국교통보험을 설립하나 출범한다.

그러나 자본금납입이 안되고 사고보상도 원활치 못해 출범 4년만인
61년 문을 닫고만다.

한국교통보험의 도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보험 공백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자동차사고에 따른 피해는 계속 늘어나 교통사고 피해보상문제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그렇다고 당시 2만8천여대에 불과한 시장여건에서 12개 손보사가
개별적으로 영업을 할수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손보협회를 중심으로 12개 손보사가 공동운영하는
이른바 풀(POOL)체제의 공영사가 62년 설립되고 이듬해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 제정돼 모든 차량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책임보험이 등장한다.

공영사는 68년 주식회사로 전환,한국자동차보험으로 간판을 바꾸게
됐으며 83년에는 모든 손보사가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경쟁시대로
돌입,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는 7백22만대(10월말현재)에 달하고 운전면허소지자만
1천2백만명에 이르러 국내자동차보험시장은 성숙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보험문화는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손보사는 적자를 이유로 계약인수를 기피하고 그바람에 초보운전자나
사고경력자들은 보험에 들고 싶어도 쉽지않으니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