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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은 ''한국의 경제관료'' 시리즈를 결산해 가는 뜻에서 기획물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본사 유화선 경제부장의 사회로 관계 업계 학계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된 좌담회의 내용을 요약한다.
< 편 집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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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김신복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정해주 < 상공자원부 제2차관보 >
이윤호 < 럭키금성경제연구소 대표 >
이국로 < 플라스틱공업협회 이사장 >
김용현 < 부산시장 경제특별보좌관 >
사회 : 유화선 < 본사 경제부장 >

<> 사회 ="한국의 경제관료" 시리즈는 개혁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상황
을 맞은 우리 관료들에게 새로운 좌표를 제시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변혁기에 나타나는 관료들의 행태를 심층 분석하는 동시에 정책메커니즘
등을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관료들을 다시 뛰게 하자"는게 주제였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의 말마따나 "미래로 세계로 뛰자"는 것이었죠.

<> 정해주 상공자원부 제2차관보 ="관료시리즈"는 오늘의 한국 경제관료들
이 안고 있는 고뇌와 현실적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진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관료들은 "물에 비친 나르시스"의 느낌속에 열심히 탐독한게 사실
이지요.

날카로운 문제제기에 접할 땐 자괴심도 적지 않았지만 관료조직에서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정확히 대변해 주는 경우가 많아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일부의 편향적 시각을 침소봉대해 관료집단 전체가 매도당한다는
서러움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관료들 대다수는 변화하는 시대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성실한 대다수 관료들을 집단논리에 의한 희생자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이윤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기업논리와 공공
효율을 지상목표로 삼는 정부논리는 엄연히 구분돼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옷감을 제대로 짜려면 날줄도 있고 씨줄도 있어야 하듯 말입니다.

<> 이윤호 럭키금성경제연 대표 =한국관료들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인식및 대처능력이 변화의 속도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긴박감이 떨어진다고나 할까요.

관료들이 변해야만 하는 까닭은 크게 세가지로 짚어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경제의 질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시장과 기술부문의 정보에서 기업이 관을 훨씬 앞지르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지시.통제형 행정은 이제 더이상 통하기 힘들게 됐다는
얘깁니다.

둘째는 지식화 정보화사회에 접어들면서 토지 자본 노동의 자본주의
3요소에 덧붙여 "창의성"이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작은 정부의 구현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셋째는 한국의 인구구성을 연령대로 보면 60년이후 출생자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시.통제보다는 개성을 살리는 신세대입니다.

지시.통제행정으론 효율성을 기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만큼 관료들의 발상전환, 변화와 변신이 가속화 되어야만 한다는 거지요.

<> 이국로 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개혁이란 행동으로부터 먼저
시작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은 각종 구호만 앞세워질 뿐 행동으로
가시화되는 건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니 행정비효율이 온존할 수 밖에 없지요.

때문에 이런 현상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관료들에게만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언론이 지나치게 현상을 부풀려 관료들을 오히려 움츠러들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것 같습니다.

관료들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문제가 드러나도 언론은 우선
폭로 비판부터 하고 나서지 않습니까.

<> 김용현 부산시장 경제특별보좌관(경제기획원 서기관) ="한국의 경제
관료"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국경제라는 험난한 고산구곡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경제부처 공무원들의 위상을 새삼 더듬어보게 됐습니다.

시리즈에서 잘 묘사됐듯이 늘 분주한채 "야근은 전공필수, 공휴일근무는
선택필수"로 알고 상처뿐인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게 우리 경제관료들의
자화상이 아닌지도 생각해 봤습니다.

정책수립과정에서 웃분들과 충돌하면서 마음속에 간직해 온 불만들, 예컨대
누더기 잡탕정책이나 조령모개, 정고관저의 낡은 사고방식, 한건주의,
전시행정, 비생산적인 회의등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졌을 때는 속이 후련
하기도 했고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나 복지부동, 전문성부족, 투명행정 결여, 사상루각을
양산하는 모래성증후군등을 날카롭게 파헤칠 때는 아픔과 당혹감에 괴로워도
했습니다.

<> 사회 =올해는 관료들의 복지부동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내내 이어진
한 해였습니다.

끊임없는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의 "복지부동"이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 김신복 서울대행정대학원교수(한국행정연구소장)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관료들의 재량권이 예전만 못해졌다는 점입니다.

국가경제에서 민간부문이 차지하는 몫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발언권이 특히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계도하고 지시하던 종래의 행정스타일이 통용되기 어렵게
됐지요.

결국 관료들은 행정집행을 위해 민간부문을 설득하고 정보를 공개하는등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이런 행정양태가 밖에서 보기엔 복지부동으로 비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각종 규제완화로 관료들이 힘을 실어 행정업무를 추진하기
힘들게 된 상황임에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행정추진과제는 여전히 과중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업무가 버거워질수 밖에 없고 그 결과가 복지부동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볼수도 있지요.

<> 김서기관 =관료의 한사람으로 가장 뼈아픈게 복지부동 현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생각보다도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로 정권교체기에 터져나왔던 사정한파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만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봅니다.

반성하건대 능력과 실력이 없는 관료들일수록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곪아터진게 복지부동 현상이라고 봅니다.

꿩밖에 잡을 줄 모르는 포수에게 호랑이를 잡으라면 복지부동할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더구나 내년부터는 전면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는데 이에 대한 관료사회
의 대응노력이 부족한 것도 여간 문제가 아닙니다.

<> 이이사장 =한마디로 우리 관료들은 동류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이 상대적
으로 희박하다는데 원인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다뤄졌습니다만 관료집단 내부의 투서나 진정서같은
행태도 복지부동의 큰 원인이겠지요.

투서나 진정서는 대개 개인적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이런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한 관료들에게 소신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 정차관보 =한국인들에게는 특유의 심리적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한도 많고 흥도 많은 민족이라는 것이지요.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시사하듯
이기주의 소극성 은폐주의가 자리잡고 있는가 하면 신명과 흥속에
어우러지는 속성도 있습니다.

이런 양면적 요소중 어느쪽이 우세하냐에 따라 나라 전체에 "한풀이
사이클"이 나타나기도 하고 "신바람 사이클"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개발연대 때와 같은 신바람 사이클을 되찾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관료조직의 뚜렷한 비전과 목표도 분명하게 제시돼야
하겠지요.

조직을 제대로 이끌 리더십도 절실한 때입니다.

<> 김교수 =맞는 말씀입니다.

한국의 공공기관장들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 흔히 하는 말이 "대과없이..."
라는 건데 곰곰 따져보면 이 말처럼 황당한 얘기도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공직자들은 업무의 과정이나 동기보다는 결과를 따지는 형식
중시 적발위주의 감사에 얽매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지금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관료들로 하여금 의욕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미국 앨 고어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행정개혁의 4대 핵심목표중 하나가
"공무원 성취의욕 제고"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일본 관료집단에 복지부동이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전문성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전문가들을 우대하는 것은 물론 한국관료사회처럼 보직을 자주 바꾸지도
않습니다.

한국의 행정부처에선 자리가 워낙 자주 바뀌다보니 정책을 입안한 사람
다르고 집행하는 사람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니 정책이 잘못돼도 누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소재도 분명치 않게
되지요.

정책실패의 큰 원인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 계 속 ...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