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정.부패.부조리(20.1%)"
"공직자의 청렴도를 점수로 메긴다면?" "10점 만점에 5.17점"

공보처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 조사해 지난17일 발표한 "공직사회
개혁촉진에 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다.

아직도 관료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차갑다는 걸 느낄수 있다.

문민정부들어 사정등 공직사회개혁이 강력히 추진됐지만 관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게 일반국민들의 인식인 셈이다.

과연 한국의 관료들은 아직도 썩어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깨끗해지지 못할까.

관료 자신들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결과는 국민들의 견해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기업이나 민원인들로부터 촌지(상품권 포함)를 받아본
경험은 몇번이나 되나"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는 응답이 88.4%에 달했다.

"받았다"는 응답자중에서도 1-2회가 8.9%였다.

3-4회나 5회이상은 각각 0.9%와 1.8%뿐이었다.

"업계로부터 향응을 받아본 적은 몇번인가"라는 질문에도 73.0%가 "한번도
없다"고 답했다.

1-2회가 20.7%, 3-4회가 5.4%, 5회이상이 0.9%로 조사됐다.

설문결과만 보면 한국관료사회를 부정.부패의 온상처럼 매도하는건
무리인듯하다.

물론 조사방법상 얼마나 정직한 대답이 나왔겠느냐는 논외로 치자면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자신은 안받았더라도 동료나 다른 관료들이 촌지를 받는
것을 보았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수치가 조금 올라갔다.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는 응답률이 27.5%로 나왔다.

질문 자체를 아예 일반화시켜 봤다.

"한국관료 사회에서 촌지수수관행이 근절됐다고 보느냐". 결과는 의외였다.

"근절됐다"는 14.3%뿐이었다.

"문민정부 출범후 줄긴 했지만 어느정도 남아있다"가 82.1%에 달했다.

"이전과 다름없다"는 반응도 3.6%나 나왔다.

자신은 받은 적도 없고 이야기도 못들었지만 아마 어디에선가는 여전이
돈봉투가 오고 갈 것이라는게 관료들의 생각인 셈이다.

관료들의 "촌지관"은 어떨까.

"관료들이 촌지를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엔 견해가
엇갈렸다.

조사대상의 47.3%가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수 있으므로 절대 받아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반면 30.0%는 "업무추진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정사안과 관련되지 않은 경우는 인사 차원에서 받아도 무방하다"는
응답도 10.0%가 나왔다.

나머지 12.7%는 "모르겠다"고 했다.

설문결과를 부처별로 따져보면 꽤나 흥미롭다.

일반의 인식과는 영 딴판이다.

특히 공보처 조사에서 "가장 많이 달라져야 할 공직분야"로 꼽힌 세무부문
(40.1%)인 국세청과 "민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보사부가 설문결과에선
가장 "청렴한 부처"였다.

보사부에선 조사대상 모두가 "촌지는 듣도 보도 못했다"고 응답했다.

국세청도 90.0%가 촌지를 받는 것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국세청과 보사부에서만 향응을 받아 보았다는 응답자가 한명도
없었다.

보사부와 국세청의 경우 "촌지를 절대 받아선 안된다"는 응답이 1백%와
88.9%에 달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에 비해 "보거나 들은 적은 있다"는 대답은 재무부(50.0%) 상공자원부
(44.4%) 건설부(42.9%)등의 순으로 나왔다.

또 농림수산부(44.4%) 건설부(42.9%) 재무부(40.0%) 경제기획원(37.5%)
등에서 "촌지수수는 업무추진을 위해 불가피한 면도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게 좋을 것 같다.

어쨌든 관료사회에 아직도 촌지가 뿌리뽑히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얼까.

우선 촌지의 액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촌지를 받았다는 "솔직한 응답"중 92.3%의 촌지액수가 50만원이하였다.

1백원이상이었다는 대답은 한사람도 없었다.

50-1백만원 사이도 7.7%에 그쳤다.

견해차는 있겠지만 치부를 할 정도는 아닌 셈이다.

소위 "검은 돈"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저 "인사치레"정도라고나 할까.

살림에 보탬도 안되는 돈을 "양심의 가책과 어느정도의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까지 받는다니 그 이유가 더 궁금해진다.

미루어 짐작해 볼만한 관료의 고백 하나를 소개한다.

"안믿겠지만 과장이 된이후 집에 가져다준 월급은 거의 없습니다. 1백
20여만원 되는 봉급은 고스란히 업무추진이나 과운영비등으로 썼죠. 정책
하나 만들려면 관계부처나 국회상임위원회에 식사대접 해야죠,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직원들한테 짜장면 한그릇이라도 사야죠, 어디 돈쓸데가 한두군데
입니까. 이런데 쓸수 있는 공식경비는 턱없이 모자란데 어떡합니까"
(상공자원부 S과장).

실제로 "법령 제.개정등 업무추진을 위해 들어가는 경비"의 경우 설문조사
에서도 50만원이하가 42.4%로 가장 많긴 했지만 1백만-2백만원이 27.3%,
50만-1백만원 19.7%, 2백만원이상 10.6%등으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나오는 공식적인 업무추진비는 한 과에 월20만원이
고작이다.

"그럼 이 경비는 어떻게 조달하나".

응답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경상비를 활용한다"는 34.3%뿐이었다.

"친구나 친지의 도움"이 26.9%였고 "관련업계나 기관의 지원"이 7.5%등
이었다.

나머지 31.3%는 "기타"라고 대답했다.

공식경비로 모자라는 돈은 주위에 손을 벌려 충당한다는 얘기다.

결국 촌지로 메우는 셈이다.

아무리 개혁이다 사정이다 해도 한국관료사회에서 촌지가 사라지지 않는
큰 이유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