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대림산업 여천석유화학공장 회의실에는 밤새도록불이 켜져
있었다. 노사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고 않아 꼬박 밤을 새웠던 것이다. 저녁
은 짜장면으로, 아침은 라면으로 때웠다. 8차례나 정회를 거듭했다.

성기웅사장이 서울본사의 부득이한 업무로 26일 오전 9시20분 회의장을
떠나면서 협상은 끝났다. 기진맥진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협상대표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성사장의 공개경영.현장
중시 경영이 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성사장은 원탁에 둘러앉은 노조대표에게 회사경영현황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여건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주겠다고 다짐했다.
임금협약 조인식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종전의 사장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사장의 변화된 스타일이 노조로부터 후한 점수를 딴 것이다.

성사장은 타고난 화공장이 기질에다 ''불도저''로 통하는 업무추진력으로
제2의 황금기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 올 매출을 당초계획보다 6백억원
늘어난 5천3백억원으로 수정했다. 흑자도 1백50억원으로 규모로 늘려잡았다.

경영을 우선 정상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비전 장기경영 비즈니스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 사업다각화 등 4개 분야
의 발전계획을 짜는데도 신경을 쏟고 있다. 2000년대에 대비한 장기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의 대
규모 증설작업을 전두지휘하고 있다. 충주비료 동서석유화학 호남에틸렌을
거치면서 갈고닦은 프로젝트건설실력을 대림에서 꽃피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장홍규 부회장은 대림의 오늘을 일궈낸 장본인. 충주비료 공정.생산과정,
영남화학 공장장, 남해화학 건설.조업이사등을 거쳐 대림의 부회장자리에
까지 오른 유화업계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대림과는 호남에틸렌(현회사의
전신)을 인수하기 직전인 78년에 인연을 맺었다. 공장장겸 부사장으로 제1
나프타분해공장의 조업을 정상화했다.

그후 SM(스티렌모노머)와 제2나프타분해공자을 비롯 합성수지 MTBE폴리
부텐 공장 등을 건설했다.

지난 85년 공급과잉 상황에서 SM프로젝트를 추지냈다. 주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가동후 2년만에 흑자사업으로 만들었다.
지난 8월에는 l-LDPE공장이 돌아가자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가 벌인
사업들은 하나같이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대림이 한 투자치고 손해본 것이 없다''는 마를 유행시켰다. 그는
원칙에 철저한 합리적인 경영자로 평가받고 있다. 신규참여한 삼성과 현대가
무더기로 인력을 빼가자 한 회사에 50명까지는 넘겨주겠다고 제의했다. 더
이상의 인력이 필요할 경우 이들 회사의 관계자들을 교육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그대로 실천했다.

오준석 상무는 대덕의 종합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영입된 케이스다.
서울대 서강대 아주대 화학과 교수에 대한중석전무 금속연료종합연구소 소장
등 학.산업게를 두루거친 팔방미인이다.

잉크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첨단의 폴리부텐을 상품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기침체로 유난히 어려웠던 90년대 초반에도 회사가 연구개발쪽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점을 강조, ''회사를 위해 무언가를 내놓아라''며 연구원을
재촉하고 있다.

김연환 전무는 대림이 새롭게 사업을 벌인 플라스틱 파이프 등 플라스틱
사업을 위해 영입됐다.

88년에 인수한 성광플라스틱을 중심으로한 제천공장을 맡아 정상화,
플라스틱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성광의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미 생산된 2억원어치를 폐기처분하는 결단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90년에는 연기공단내 5만평부지에 세계적인 규모의 플라스틱공장을 건설
하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대림 부임시 4억~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1백50억원 규모로 키웠다.
플라스틱사업을 5천억 규모로 키우기 위해 영국 메트론사에서 들여온 토목
보강재 생산기술을 상품화, 신규 수요발굴에 나서고 있다.

강석민전무는 75년 호남에틸렌 발족당시 총무과장으로 산파역을 맡았었다.
이사로 승진한 89년 부터 지금까지 수지영업을 맡아오면서 합성수지사업을
일궈낸 영업통이다. 투자자유화에 따른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조정에 맞춰
합성수지를 수출 상품화했다. 에틸렌 프로필렌 등 올레핀의 가격산정공식을
마련, 업계자율 가격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업무쪽까지 맡아 나프타의 수출입자유화 관세경감제
실시등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약할도 했다.

임휘련 전무는 충주비료 근무때부터 경리 관리부문을 맡아온 자금분야
전문가이다.

89년부터 총무를 총괄하면서 안방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컴퓨터''라는 별명처럼 치밀하고 계수에 밝으면서도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설 정도로 친화력도 뛰어나다.

김용환상무는 신규프로젝트전문가로 통한다.

호남에틸렌시절 생산차장으로 부장이던 성사장과 더불어 국내 첫 국제
규모의 여천제1공장을 정상화 하는데 앞장섰다. 석유화학플랜트의 운전에서
부터 설계 건설 조업등과 관련한 기술확립에 기여했다.

요즘은 세계적인 규모로 발돋움한 여천공단을 질로서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내부 경영개혁에 신경을 쏟고 있다.

<김경식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