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던 문민정부의 부실기업정리대상 1호인 (주)한양이 결국 합리화업
체로 낙착됐다.

부도를 내자니 연쇄도산을 감당하기 어렵고 합리화지정을 하면 국민여론이
빗발칠게 뻔해 망설이던 정부가 장고끝에 결국 "정부 주도의 합리화"란 5공
식 해법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특혜시비를 벗어나기 위해 과거의 부실기업정리방식과 차별화하려고
고심한 흔적을 읽을수 있다.

종전처럼 부실기업을 인수한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합리화지정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게 정부측이 내세운 대표적인 사례다.

인수당사자인 주택공사와 아파트입주예정자 하청중소기업만이 수혜자라는
것이다.더군다나 한양의 전사주인 배종렬씨에겐 한푼도 없다는 얘기다.

지원내용을 들여다 보더라도 과거 부실기업정리때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붙던 종자돈(시드머니)이나 한은특융은 배제됐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단지 채무면제와 이에따른 세금감면,그리고 상업은행 채무조건을 장기 저
리분할상환으로 완화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정도는 한양의 정상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원이라는게 정부의 주장이다.
채무탕감액을 당초 1천5백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줄이고 약 2천4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던 세금감면액을 6백88억원으로 축소한 것도 특혜시비를
벗어나려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산업정책이 아직도 구태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곳곳
에서 확인되고 있다.

우선 한양을 합리화업체로 지정하기위해 산업합리화기준을 개정했다는 점
에서 그렇다.

"제3자인수에 의한 경영정상화가 불가피한 경우"라는 새로운 조항이 삽입
된게 바로 한양을 지정하기위한 조치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이 조항은 앞으로도 "제2의 한양"이 발생할수 있는 소지를 남겨두
었다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과거 합리화업체로 지정돼 현재 사후관리를 받고 있는 부실기업중 한양과
같은 사례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합리화지정으로 인해 새로운 국민부담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주장에도 문
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6백88억원의 세금은 "한양이 도산했을 경우엔 발생하지도 않았을 조세를
계산상으로 감면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부담으로 전가되지 않는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나 기존 법상 걷어야할 세금이라는 점에서 "논리를 위한
논리"로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특히 지난 1년여동안 끌어온 한양문제로 인해 현 경제팀이 정책불신을
자초했다는게 더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왕에 합리화업체로 지정하려면 좀더 일찍 처리해 불필요한 행정낭비를
막았어야 했다는 것이다.정부 스스로도 이런방식의 합리화지정이 불합리하
다는 점을 인정하고있다.

합리화지정기준을 개정해 앞으로는 사실상 합리화지정이 불가능하도록 할
것이라는 데서도 이를 엿볼수 있다.

지금까지 합리화업체로 지정된 83개 기업중 현재 사후관리중인 46개사의
30%에 가까운 17개 기업이 아직도 자본잠식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실패한 합
리화정책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