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대기업자금담당자로서 제방을 찾아온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채병윤조흥은행심사당담상무는 "3년전 심사부장시절에는 자금에 목마른
대기업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애를 먹었으나 요즘에는 한명도 볼수
없고 오히려 기업을 찾아 나선다"고 말했다.

예전과 달라진 대기업의 대은행업무행태는 금리인하요청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요즘에는 금리를 깎아달라는 대기업이 많습니다. 물론 외환거래를 늘려
주기로 약속하고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김동환상업은행여신기획부장)

최근들어 은행을 찾는 대기업사람이 줄고 금리인하까지 요청하는 달라진
현실은 계수적으론 대기업의 은행대출비중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5년말해도 은행대출중 대기업대출의 비중은 39.8%로 40%에 육박했다.
그비중이 90년에 29%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은행이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대출해야 하는 비중을 정부가 계속 높여와 대기업비중이 불가피
하게 낮아진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대출비중이 계속 낮아져 지난 3월말현재 25.3%까지 떨어졌다.
이는 은행과 대기업과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데서 비롯됐다고 할수
있다. 대기업도 대기업나름이지만 자금조달에 관한한 은행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첫번째 요인은 자금시장이 좋아졌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회사채유통
수익률이 연12%대의 낮은 수준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을 만큼 유동성
이 양호해 대기업들이 은행문턱을 바삐 들락 거릴 필요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요인은 대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
하는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의 융통이 상대적으로 쉬워졌다는 것이다.
재무부는 지난 1월말부터 제조업위주로 회사채발행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
웬만한 대기업들은 중장기자금조달계획을 회사채발행위주로 세워놓고 있다.
이미 올들어 16일까지 발행된 회사채는 순증기준 3조1천7백19억원어치로
작년 한햇동안 발행된 물량의 60%에 이르고 있다.

해외차입여건이 개선된 것도 대기업의 은행의존도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재무부는 작년에 19억1천6백만달러에 달했던 기업의 외화증권발행을 올해는
25억달러로 한도를 늘려 잡아놓았다. 물론 기업의 수요가 정부에서 정한
한도보다 많아 기업들이 원하는 만큼 전부 발행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은행에 기댈 요인이 적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은행측에서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기업은 마진이 적습니다. 마진이 적은데다 대출이 일어나면 규모가 커
다른 쪽에 대출할수있는 여력만 줄게 됩니다. 반면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은
마진이 상대적으로 크고 은행고객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습니다"(이관우한일은행전무)

유시열한은이사는 "대기업들은 외환거래등을 제외한 자금조달은 자본시장을
활용하고 은행권은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이 이용
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금융행태가 바뀔것"이라며 "그 변화는 이미 시작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은행의존도하락현상이 진전돼 결국 탈은행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대기업은 자기신용을 토대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이 은행에 의존하는 역할분담이 확연히 이뤄지는 날도
곧 도래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대기업의 대은행
행태변화가 완전히 정착되기에는 아직 불안요인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김동환상업은행여신기획부장은 "비교적 여유있는 통화관리가 조금이라도
빡빡해지면 대기업들이 당좌대출을 금방 늘린다"며 "이에 대비하지 않고
자금을 운용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최근에 뚜렷해지고 있는 대기업의
자금사정호전과 그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은행의존도하락현상이 완전히
굳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신축적인 통화관리를 통해 자금시장에 불안심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은행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개인고객에게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할수 있는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은행의 심사기법을 향상시키는 게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위주의
은행영업을 앞당길수 있는 기폭제가 된다. 은행의 여신심사기능이 취약할땐
떼일 염려가 적은 대기업을 선호했으나 심사기능이 강화돼 기업의 신용도를
제대로 파악할수 있을때는 괜찮을 중소기업을 골라 이익을 많이 남기면서
돈을 빌려주는 중소기업위주의 장사를 할수있기 때문이다.

또 지금보다 직접금융시장의 수요기반을 더 넓히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미국은행들의 경우 대기업에 대해서는 거의 대출을 하지 않고 있다.
국내금융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기업의 은행의존도하락 현상이 얼마나
진전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