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관료-.

그들에겐 분명 전성시대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라경제를 앞서 이끌어온데
대한 자부심(pride)이 대단했다. 30대초반에 국장자리에 오를 수있을 정도로
승진(promotion)의 매력도 컸다. 민에 대해 행세(power)도 부릴만큼 부려
봤다. 3P는 자연스레 그들의 주가를 상한가까지 끌어올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관료 수난시대". 솔직이 말해 그들은 자부심보다
자괴심을 더 느낀다. 30대국장은 커녕 40대사무관을 벗어나기도 어렵사리
돼있다. 민에 군림하기보다 민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하다.

그들이 받는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혁의 격랑은 시도 때도 없이
일고있다. 사정의 회오리는 사그러들줄 모른다. 국제화의 물결은 그들을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게 한다. 그것이 오늘의 시대상황이다. 악재만 돌출할
뿐이다. 당연히 주가도 연일 곤두박질이다. 바닥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한 동정은 반푼어치도 없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오히려 따갑기만 하다. "한국경제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경제관료때문"
(미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비난은 벌써 옛이야기다. "잘되면 기업탓, 잘못
되면 관료탓"이라는 새로운 이분법까지 생겨나는 마당이다. 그것도 그들이
업신여겨오던 민으로부터 말이다.

이같은 "관료두들겨패기"는 시간불문 장소불문이다. 사회분위기가 그렇다.
그것을 국민정서라면 정서랄 수도 있다. 왜일까.

말썽의 소지만 엿보이면 소관업무를 내팽개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경련으로 하여금 2통사업자를 선정토록했던 것은 "관료사회의 직무유기"
이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한 기업의 승용차사업진출도 되면 되고 안되면
왜 안되는지를 딱 잘라 설명하면 그만일텐데 산하연구기관의 연구결과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니 연구기관인들 정답을 내놓겠는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4지선다형문제로 되돌려줄 수밖에.

자기본위의 잣대만 있지 융통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전형적인
"프로크루스테스"랄까. 프로크루스테스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악인이다.
그는 쇠침대 하나를 갖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오면 그 침대에 뉘어봐 침대
보다 키가 길면 그만큼 잘라버리고 짧으면 억지로 잡아 늘렸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하게 "규제완화를 몇건씩 했습네" 하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는 불평을 일게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네 관료가 프로크루스테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과거의 고정관념(쇠침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관료두들겨패기의 포인트는 "세상이 다 바뀌는데 왜 너희들만
바뀌지 않느냐"는 것으로 정리할 수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바뀔려고
한다. 다만 변신이 더디다는 소리도 있다. 또 더딜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하긴 맞는 말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그들은 너무 오랜동안
권위주의시대를 살았다. "권력의 사복으로만 익숙해 있었지 공복되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었다"(홍승직고려대교수.사회학)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료들은 지력발전을 저해당했다. 그 결과는 "고비용 저효율"로
이어지고 있다. "일을 하다보면 헛발질하기가 일쑤다"(경제기획원 K국장)는
자체진단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관료들의 생산성이 얼마나 낮은가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선진국은 그만두고 개발도상국 리스트만
봐도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나 칠레보다도 뒤쳐져 있다. 93년기준 랭킹 9위.
꼴찌나 다름없는 순위다. 정부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국가경쟁력이 향상
되리란 것은 기대난이다. 국가경쟁력을 높이지 않고는 세계경제전쟁에서
낙오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관료두들겨패기가 기승을 부릴수록 관도가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만 관도 살고 나라의 기운도 뻗어나갈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그의 저서 "경제학의 조망"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한 국가의 발전은 경제관료들의 청렴성과 생산성에 좌우된다"고.
이 말은 개발연대가 끝난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렇다. 청렴성과 생산성이다. 발가벗고 저울질 당하면서 우리 경제관료들
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요는 빨리, 제대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가 목적하는 바도 바로 거기에 있다.

< 유화선 경제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