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물류 사업 직접 진출 가능성 높여

기본적으로 물류의 단계는 단순하다. 소비자가 온오프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배송을 요청하면 판매자가 가져다준다. 이때 판매자는 직접 보유한 차로 물건을 배송할 수 있지만 특화된 전문 기업에 비용을 주고 요청하기도 한다. 요즘은 대부분 배송 전문기업이 라스트 모빌리티의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흔히 볼 수 있는 택배, 음식배달 등도 대부분 배송 전문기업이 수행한다.
[하이빔]기아, 택배 사업 나설까?

그런데 배송 전문 기업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직접 구입한 운송 수단에 배송 기사를 고용해 물건을 전달할 수 있지만 운송 수단을 보유한 개인 사업자와 배달이 필요한 판매자를 주선하고 중간에 수수료를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흔히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소형 화물배송은 대부분 후자 방식이 활용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택배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직접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배송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곳이 있다. 바로 쿠팡이다. 쿠팡은 자신들이 구입한 소형 트럭에 배송 기사 또한 직접 채용해 물건을 배달한다. 다소 노동 강도가 높은 로벳 배송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직접 물류를 수행한 덕분이다.

여기서 기아의 고민이 시작된다. 물류에 최적화된 이동 수단을 개발했을 때 과연 누가 제품을 구입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동력은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가격은 비싸기 마련이고 정부 보조금은 줄어드는 과정이라 구매자를 특정 짓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택배 전문 기업에 제안했을 때 해당 기업은 자신들이 배송을 주선하는 개인 택배사업자에게 기아 제품 구입을 권유해야 하는데 지금의 택배 비용으로 그들이 비싼 차 값을 부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기차의 강점으로 여겨지는 에너지 비용도 점차 오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디젤 내연기관 트럭이 아니면 결코 이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쿠팡은 기업이 운송 수단을 직접 구입해 운용하는 만큼 상황이 조금 다르다. 기아는 쿠팡과 함께 물류 및 유통 배송 시장에 최적화된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Purpose Built Vehicle)를 개발하고 연계 솔루션 및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출시 목표는 2025년이고 스케이트 보드 플랫폼을 활용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평평한 플랫폼을 활용하면 넓은 공간이 만들어져 물건도 많이 실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양 사의 협업 단계다. 1단계는 물류 환경을 진단하고 2단계는 전동 물류 수단 개발 및 이동 패턴에 따른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다. 그리고 3단계는 인력 운영 및 배송시간 효율성 증대를 위한 자율주행 택배의 시범 운영 등이다. 단계별 전략이지만 궁극적으로 기아가 운전자 없는 전동 물류 이동 수단을 개발해 쿠팡에 공급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쿠팡도 인건비를 줄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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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가서 '정말 공급이 될까?'를 생각해보면 역발상도 가능하다. 기아가 쿠팡에 이동 수단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쿠팡의 배송 요구를 기아가 직접 개발한 자율주행 물류차로 수행해주는 방식이다. 어차피 운전자가 없어 인력 부담이 덜한 데다 주행 데이터를 끝없이 확보해야 하는 기아로선 오히려 돈 받고 쿠팡의 배송 요구를 소화해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사람이 운전할 때는 쿠팡이 배송 역할을 수행하되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단계로 가면 배송 기사의 역할이 사라져 제조사가 곧 이동 서비스 공급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동 서비스에 진출하려는 자동차회사의 움직임은 무척 활발하다. 현대차그룹 또한 미래의 청사진에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 변신을 포함시켰고 GM, 폭스바겐, 토요타 등도 물류 사업에 직접 진출했거나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은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든 화물이든 이동이 필요할 때 운송 수단은 필수 불가결한 필요 조건인 탓이다. 따라서 이동 수단 제조사가 직접 이동 서비스에 진출하려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지만 아직까지는 기존 교통 사업자의 반발이 커서 잠시 숨고르기를 할 뿐 기회만 포착되면 진입은 예정된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이동 서비스 사업자의 저항을 보면 화물 쪽이 여객보다 적어 기아로선 쿠팡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은 셈이다.

이번 양 사의 협업 이면에는 흥미로운 미래 예측이 하나 담겨 있다. 이동 전문 기업과 온라인 물건 판매 전문 기업의 영역 구분이다. 쿠팡은 물건을 파는 일에만 집중하고 기아는 쿠팡의 물건을 자율주행으로 배송시켜 제조물을 소모시킴과 동시에 운송 이익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물류를 위한 거점 등은 쿠팡의 몫이다. 기아는 오로지 물건 배송만 해주려 하는데, 그래야 필요한 물류용 차를 만드는 완성차 공장이 지속적으로 돌아가 제조업이라는 본질이 유지될 수 있다. GM이 최근 미국 월마트와 손잡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전기 물류 밴으로 월마트에서 물건을 사 소비자에게 배송해주는 사업에 착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기아와 쿠팡의 협업은 기아의 택배 사업 진출을 예고하는 복선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