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충전 주행거리 길수록 택시 활용 가치 높아

지난 2002년 5월, 서울 하이얏트 호텔에서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안칭헝 중국 베이징자동차 사장이 중국 내 '베이징현대자동차'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양 사가 동일하게 50:50으로 지분을 출자했고, 중국 공장의 첫 차종으로 EF쏘나타를 만들었다. 그리고 베이징시는 그간 중국 수도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온 택시 차종 전환을 추진했고 이때 베이징현대차의 아반떼XD와 EF쏘나타는 택시로 공급되면서 중국 내 현대차 사업이 단숨에 안정 궤도에 올랐다. 실제 베이징현대차는 택시 덕분에 중국에 진출하자마자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해 베이징 시정부는 쏘나타를 표준 택시로 선정해 베이징현대차의 앞날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하이빔]베이징차 중형 EV 세단, 택시로 통할까

이후 베이징현대차의 성장은 눈부셨다. 2011년 73만대를 거쳐 2016년에는 114만대가 판매되며 지칠 줄 모르는 도약이 이뤄졌다. 생산 공장도 승용 기준 5곳이 가동되며 사업 확장에 매달렸다. 하지만 2017년 한국 내 사드 배치가 중국 내 민족 감정을 자극하며 판매는 78만대로 곤두박질쳤다. 물론 그사이 중국 내 토종 브랜드의 추격과 수많은 자동차기업의 공급 과잉도 이유로 꼽혔지만 한번 무너진 판매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결국 현대차는 중국 내 물량 공급의 과잉을 인정하고 보다 현지화 된 현지 제품 개발 및 동남아시아 수출 등의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그런데 한편에선 현대차의 중국 사업 부진의 이유로 한발 느린 제품 대응 방식을 문제로 꼽기도 했다. 일찌감치 EV를 육성하며 전기차 선도 국가를 선언한 만큼 친환경 EV 대응이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지적이다. 물론 중국 정부가 한국산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지급을 제도적으로 막은 것도 있지만 전략적인 돌파를 결정했다면 중국 내수용 전기차에는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로선 당연히 품질 유지가 중요했지만 전기차는 투입 시점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지적이다.
[하이빔]베이징차 중형 EV 세단, 택시로 통할까

그 사이 중국 내 토종기업의 전기차 확대는 보조금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비야디(BYD)를 비롯해 거의 모든 토종 브랜드가 배터리 전기차를 내놓으며 이동 산업의 에너지 대전환을 시도했다. 전기차의 종류도 소형 승용에서 대형 버스까지 가리지 않았고 단독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해외 자동차기업이 친환경차를 만들면 단독 소유권까지 인정했다. 테슬라가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지은 것도 친환경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단독 경영 및 소유권을 가질 수 있어서다. 그리고 어느새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은 '전기차의 천국', '전기차의 집결지'로 불리며 모든 친환경차 기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다.
[하이빔]베이징차 중형 EV 세단, 택시로 통할까

현대차와 합작한 베이징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베이징차는 현대차와 별개로 일찌감치 전기차 개발 및 생산에 나서 중국 내 전기차 부문에선 이미 현대차를 압도했다. 전기차 판매 순위 또한 4위를 기록할 만큼 성장세도 가파르다.

그러자 이번에는 역으로 베이징자동차가 한국의 택시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 중형 세단 EV가 없는 국내 택시 전용 차종으로 베이징자동차의 중형 전기 세단 EU5와 EU7 등을 투입하겠다는 의지다. 두 차종은 현대차와 합작사를 운영하며 터득한 쏘나타의 노하우가 들어간 제품이다. 심지어 일부 부품은 쏘나타와 호환이 가능할 정도로 익숙하다.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하며 베이징 시내를 내연기관 EF쏘나타로 뒤덮었다면 이번에는 베이징자동차가 한국 내 서울의 풍경을 전기 중형 세단으로 바꾸겠다는 야심이다. 여전히 제품 마감 등은 한국차에 비해 열세지만 택시는 전기 파워트레인의 성능과 내구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했고 이 부문은 오히려 앞서 있다는 자신감이 배경이다.
[하이빔]베이징차 중형 EV 세단, 택시로 통할까

그리고 자신감 뒤에는 택시로 투입할 중형 세단 전기차의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400㎞ 이상이고, 필요하면 15분 이내에 80% 충전이 가능한 인프라의 직접 구축이 가능하며, 나아가 주행거리가 많은 택시의 충전 시간이 부담될 경우 이미 보유한 배터리 교체형도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서다. 또한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리튬 이온 배터리를 적용할 수도 있는 데다 국산 전기차 대비 가격 경쟁력은 충분해 택시 전용 차종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확신한다.
[하이빔]베이징차 중형 EV 세단, 택시로 통할까

이들 제품의 진출을 두고 현대차 내부의 위기의식도 분명 확인된다. 개인 승용은 아직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제 아무리 중국 전기차라도 일반 소비자의 구매 욕구가 높지 않겠지만 택시는 구입 및 유지 비용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시장이기 때문이다. 구입 가격이 국산 소형 전기 SUV보다 저렴하고, 덩치는 훨씬 크며, 1회 충전 후 주행거리 또한 400㎞가 넘고 한국기업 배터리 등이 탑재돼 판매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오아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