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정선 김병규 특파원=닛산(日産)자동차의 일본인 사장인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대표이사가 26일 르노와 닛산의 제휴 관계가 대등하지 않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프랑스 경제장관이 전날 주도권 싸움에 개입하는 듯한 말을 한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카를로스 곤 전(前) 닛산자동차 회장의 체포 후 닛산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프랑스측의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사이카와 사장은 이날 사내 TV 등을 통해 사원들에게 곤 회장의 체포 경위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르노와의 제휴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며 두 회사의 제휴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그러면서 닛산자동차와 르노 사이의 협상은 지금까지는 곤 전 사장이 담당해왔다면서 "앞으로는 내가 직접 (르노측에) 이야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이카와 사장은 다만 르노-닛산-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3사 연합에 대해 "연합을 계속하겠다"고 말하며 사원들에게 "힘들지만 함께 힘내자"고 격려했다.

프랑스 정부가 지분의 15.01%를 가진 르노는 닛산 주식의 43.4%를 갖고 있다. 닛산은 르노 주식의 15%를, 미쓰비시자동차의 주식 34%를 각각 보유하며 3사가 교차지분 소유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르노는 보유 주식에 대해 닛산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 닛산은 르노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복잡한 지분 구조 속에서 곤 전 회장은 르노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겸 대표이사,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의 회장을 맡았었다.

르노그룹은 지난 20일 이사회를 연 뒤 곤 전 회장이 르노그룹 회장과 최고경영자(CEO)직을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닛산은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곤 전 회장의 해임을 결정한 바 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이날 임시 이사회에서 곤 전 회장의 회장직 해임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사이카와 사장의 발언은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이 닛산자동차의 경영권 싸움에 개입하는 듯한 말을 한 가운데 나왔다. 르메르 장관은 전날 자국 TV 프로그램에 출연, 르노-닛산-미쓰비시자동차 3사 연합의 최고위직은 기존 방침에 따라 "르노 회장이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닛산이 르노 측에 곤 전 회장에 관한 사내 조사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르메르 장관은 다만 3사 연합에 대해 "현재 주식의 상호보유를 존중하면서 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며 "일본 측과도 현상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곤 전 회장의 체포 후 닛산자동차를 둘러싼 일본과 프랑스 사이의 경영권 갈등이 격해지고 있는 가운데, 3사 연합의 경영권이나 소유 구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주 열릴 것으로 알려진 3사 연합의 경영진 회의에서 르노와 닛산 간의 임원 파견이나 출자 비율의 재검토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곤 전 회장측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검찰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전날 보도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수사당국에 유가증권 보고서에 허위로 기재할 의도는 없었다며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NHK에 따르면 곤 전 회장과 함께 체포된 그레그 켈리 전 대표이사는 곤 전 회장이 퇴임 뒤 보수 일부를 닛산으로부터 받을 계획이었다면서도 "퇴임 뒤 보수는 정식 결정된 게 아니어서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변에 말했다. 현 시점에서는 곤 전 회장에 대한 지급 명목이 컨설팅 비용 또는 자문료 등으로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실제로 지급되지 않았으니 이를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할 필요는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앞서 일본 언론은 곤 전 회장이 최근 8년간 총 80억엔(약 800억원)을 퇴임 뒤 받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매년 작성했으며 검찰은 이 각서를 의도적인 소득 축소신고의 증거로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금융상품거래법 등에선 퇴임 뒤 보수를 받을 경우에도 해당 금액이 확정된 단계에서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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